함백(咸白), 태백(太白)은 모두 우리말의 '크게 밝다'는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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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백(咸白), 태백(太白)은 모두 우리말의 '크게 밝다'는 뜻
  • 유태헌(서울본부장)
  • 승인 2011.03.25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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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태헌의 백두대간 종주기] 26구간 ①

올해 들어 본지는 국토의 등뼈를 밟아나가는 유태헌(홍주신문 서울본부장홍동출신ㆍ홍성고 20회ㆍ손전화 010-3764-3344) 출향인의 백두대간 종주기를 비롯해 산행기를 연재한다.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편집자 주>

산행일자 : 2011년 3월 19일~20일
구       간 : 화방재-수리봉-만항재-함백산-은대봉-두문동재-금대봉-비단봉-매봉산-피재
도상거리 : 21.6km
산행시간 : 9시간 10분 소요

 

 

 

 



오늘 대간 길은 화방재에서 만항재를 거쳐 함백산(1573m), 은대봉(1442m), 금대봉(1428m)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마루금은 해발 1400~1500m를 넘나드는 봉우리가 줄을 잇는다. 말 그대로 하늘 금이다. 이 정도면 지리나 덕유ㆍ설악산 등에 견주어도 결코 빠지지 않는 높이다. 또한 이 구간은 산봉우리뿐 아니라 만항재(1330m), 두문동재(1268m) 등 국도와 지방도가 지나는 고갯마루도 해발 1300m의 위아래를 넘나든다. 이는 남한에서는 최고라 할 수 있는 높이다. 23차 대간중 소백산 정상 비루봉에서 동상과 강추위에 인원이 많이 줄어 버스 한 대로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새벽 3시경 화방재(花房峙)에 도착한다. 고갯마루에 철쭉과 진달래가 무성하게 피어 '화방재'라고 한다. 또 다른 옛 이름은 어평재(御平峙)인데 이는 조선왕조의 단종이 숙부인 수양대군(세조)에게 영월 청령포에서 죽임을 당하고, 그 혼령이 태백산 산신이 되었을 때, 이곳을 지나오셨다 하여 왕이 지나간재, 어평재라 했다고 한다. 이곳 화방재에는 지난 번에 온 눈이 아직도 녹지 않아 스패치와 아이젠으로 무장하고, 랜턴을 찾으니 보이지 않는다. 분명히 챙겼는데 없다. 다행히 김란희 님에게 빌렸다. 지난번 동상으로 손가락 이식수술 결과가 좋아 퇴원했는데, 대간에 합류하여 전 구간은 어려워도 일부분이라도 해야 한다며 참여했다. 의지와 용기, 그 열정에 감동하며, 김수덕 님, 배천석 님과 함께 쾌유를 빈다.

보름달은 구름에 가린 채 캄캄한 산길을 유난히 밝은 랜턴 불로 낙엽송 조림지를 오르면 수리봉(1214m)에 이르고, 창옥봉(1238m)을 지나 고만고만한 산길을 조금 가면 군사보호지역에 도착한다. 철조망 오른쪽을 통과하여 도로를 따라 조금 내려가면 우리나라에서 포장도로가 놓인 고개 가운데 제일 높은 414번 지방도인 만항재(1330m)에 이른다(05:10).

 

 

 

 

 

 



한밤중엔 별이 이마로 쏟아지는 신비스러운 경험을 할 수 있다지만 눈이 내리는 새벽이라 아쉬움 뿐이다. 각종 안내판과 매점도 있는 만항재를 뒤로하고 함백산으로 가는 우측으로 접어든다. 사실 함백산은 상처투성이의 '산'이다. 석탄을 실어 나르기 위한 도로, 방송국 중계소로 이어지는 도로, 선수촌 가는 길 등이 정상 부근까지 닦여 있어 여기저기 상처가 많다. 이렇게 도로가 잘 돼 있으니 등산의 묘미를 떨어뜨리기 때문에 '산' 맛은 느낄 수 없는 아쉬움이 있으나 우리나라에서 제법 높은 산이다. 즉 백두산(2744m), 한라산(1950m), 지리산(1915m), 설악산(1708m), 덕유산(1618m), 괘방산(1577m), 함백산(1573m), 태백산(1567m) 순으로 7번째 높은 산이다. 눈이 내려 미끄러운 가파른 능선길을 따라 힘겹게 함백산(咸白山 1573m)에 오른다(06:30).

 

 

 

 

 

 



함백산(1573m)은 태백산(太白山 1567m)보다 7m 더 높은 태백 제일봉으로 구분하지만, 예전엔 태백산과 함백산은 하나의 산으로 인식되었을 것이다. 함백(咸白), 태백(太白)은 모두 우리말의 '크게 밝다'는 뜻이다. '크고 밝은 뫼'의 뜻으로 대박산(大朴山)이라고도 불리었고 '묘범산'이라고도 불리었다. 정상에서는 동으로 태백시가, 서쪽으로는 정선이 한눈에 조망되고, 은대봉을 거쳐 두문동재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분수령도 손금처럼 한눈에 들어오지만 내리는 흰 눈에 시야가 가려 아쉽다. 정상에서 내려서면 헬기장이 있고 포장된 도로를 건너 내려가면 오래된 주목나무가 철망 안에 보호․관리되고 있다. 어설픈 1506m의 중함백산을 지나면 왼쪽으로 적조암 내려가는 길도 보이며, 이곳이 제3쉼터다. 󰡐샘물 쉼터 80m󰡑, 그렇다. 지도에도 표시된 가뭄에도 물이 마르지 않는다는 샘터다. 눈이 점점 더 내리는 쉼터에서 비닐 가림을 하고 아침 식사를 맛있게 한다. 식사 후 따끈한 커피 한잔에 언 몸을 녹이고 은대봉으로 향하는 길은 태백선이기도 한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긴 정암터널(4505m) 위를 지나게 되며, 산자락에는 기차역 중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한 추전역(855m)이 있는데 이곳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잠시 후 은대봉(銀臺峰.1442.3m)에 오른다(09:10). 원래 은대(銀臺)란 오늘날 대통령 비서실에 해당하는 승정원을 은대라고 했는데, 그것과는 상관이 없을 것 같다. 아마 그만큼 소중한 자연경관이요, 생태환경이라 값비싼 금은 비단 명칭을 붙였을 것 같다. 일명 상함백이라고도 부르는 은대봉 서쪽 아래에 자리한 정암사(淨岩寺)는 우리나라 5대 적멸보궁 가운데 하나로 추앙받는 사찰이다. 신라의 자장 스님은 부처의 진신사리를 이곳에 모신 뒤 입적할 때까지 이곳에서 머물렀다. 불교도들에게 이름난 성지로서 전국의 사대주중은 물론이요, 인근 지역을 지나던 관광객들의 발길도 붙잡는다. 고산 특유의 짙은 내음과 청정함이 배어 있고 경내를 흐르는 계곡엔 1급수에서만 사는 열목어가 산다. 진흙에서 핀 연꽃처럼 참 보배로운 존재다.

적멸보궁은 범종각 뒤편에 터를 잡았고, 사리는 적멸보궁 뒤편의 절벽 위에 서 있는 수마노탑(보물 제410호)에 봉안되어 있다. 적멸보궁을 들렀다가 산길을 5분쯤 오르면 석회암 벽돌을 차곡차곡 쌓아 올리고 상륜부에 청동 장식을 얹은 수마노탑이 반긴다. 이쪽 지역에서는 보기 드문 7층 모전석탑이다. 정암사의 아늑한 정경 너머로 고한시내가 멀리 내려다 보인다.

 

 

 

 

 

 



백두대간 분수령에서 은대봉을 넘어서면 싸리재라고도 부르는 두문동재(1268m)에 이른다. 전국에서 가장 높은 38번 국도가 지나는 곳이다. 한자 고사성어가 대개 중국에서 유래하는데 토종인 듯해 반갑다. 그러나 반가워하기에는 얘기가 묵직하다. 고대 중국의 백이숙제(佰夷叔齊) 설화에 불사이군(不事二君, 두 임금을 섬기지 않음) 정신이 깔려서이다. 고려가 망하고 조선조가 개국하는 무렵 송도(개성) 만수산에 있는 두문동에서 칩거해 새 왕조의 부름에 응하지 않다가 선비들이 화를 입었고, 두문동으로 성현들을 모시러 간 신하까지도 돌아오지 않는다 해서 '두문불출'이라는 토종 고사성어가 생겨났으며, 그때 그 일부가 우리지방 홍주(홍성), 보령, 정선 등으로 피신했다. 그래서 정선군 남면 거칠현동(居七賢洞)이요, 두문동재가 되었다고 한다.

한편 우리나라 대표 민요라 할 아리랑 중에 정선아리랑이 가장 오래되었다고 한다. 정선아리랑(아라리)의 시원(始原)이 바로 600여 년 전 두문불출한 사람들의 사건이라고 한다. 피신해온 그들 나름의 의(義)를 생각해서 부귀영화대신 초로에 묻혀 살다 죽은 사람들 얘기, 거기다가 남녀 간의 사랑 얘기, 민초들의 온갖 애환을 버무린 것이 정선아리랑 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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