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숲 ,인간에게 아름다움과 살맛나는 세상 '선물'
상태바
건강한 숲 ,인간에게 아름다움과 살맛나는 세상 '선물'
  • 유태헌 서울본부장
  • 승인 2011.04.01 14:0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올해 들어 본지는 국토의 등뼈를 밟아나가는 유태헌(홍주신문 서울본부장홍동출신ㆍ홍성고 20회ㆍ손전화 010-3764-3344) 출향인의 백두대간 종주기를 비롯해 산행기를 연재한다.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편집자 주>

산행일자 : 2011년 3월 19일~20일
구       간 : 화방재-수리봉-만항재-함백산-은대봉-두문동재-금대봉-비단봉-매봉산-피재
도상거리 : 21.6km
산행시간 : 9시간 10분 소요

 

 

 

 


두문동재 마루에서 금대봉으로 들어서는 제법 넓직한 길을 따라 오르면 금대봉(金臺峰.1418m)이다(10:00). 금대라는 말은 검대로, '신이 사는 곳'이란 뜻이고, 또한 금이 많이 난다고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한강 발원지인 검룡소를 품고 있는 금대봉에서 대덕산(1307m)으로 이어진 산자락은 자연 생태계 보존 지역이다. 천연기념물인 하늘다람쥐가 날아다니고 꼬리치레도룡뇽이 집단서식하며, 이곳에서 처음 발견된 대성쓴풀을 비롯해 모데미풀, 한계령풀 같은 휘귀식물도 많이 자라고 있다. 산기슭에 있는 제당굼샘과 고목나무샘물골의 물구녕 석간수와 예굼터의 석간수에서 솟은 물이 스며들어 검룡소에서 다시 솟아 514km의 한강의 발원지가 된다. 물이 솟아오르는 굴속에 검룡이 살고 있다고 해서 붙여진 검룡소(儉龍沼)는 둘레 약20m 이고, 깊이는 알 수 없으며, 사계절 9도의 지하수가 하루 2000~3000톤씩 솟아올라 폭포를 이룬다. 이처럼 금대봉 정상엔 '양강 발원봉(兩江發源峰)' 푯말이 세워져 있다. 양강이란 한강과 낙동강으로서, 한강의 발원지인 검룡소와 낙동강의 발원샘인 너덜샘(은대샘)을 품고 있다는 뜻이다. 낙동강 발원지인 황지(黃池)의 옛 이름은 '하늘 못' 이란 뜻의 '천황(天潢)'인데, 세월이 지나면서 '황지(潢池)'라 부르다 나중에 삼수변이 떨어져 나가면서 지금의 황지(黃池)가 되었다. 원래 황지 부근은 수만 평의 땅이 질퍽한 늪지대를 이뤄 버드나무와 물푸레나무 등이 우거진 천혜의 늪지대였다. 그러나 지금은 도시의 콘크리트 건물들 한가운데 있는 󰡐인공 연못󰡑으로 전락했다. 시주를 청하는 스님에게 쇠똥을 퍼 주었다가 집터가 꺼지면서 큰 연못으로 변하는 화를 당한 황부자의 전설이 전해온다. 마당 늪, 방깐(방앗간)늪, 통시(변소)늪의 세 연못과 굴뚝소가 전설의 흔적이다. 이같은 황지가 낙동강 발원지로 인정을 받아 왔다. 그러나 정확히 말하자면 황지는 낙동강의 발원지가 아니다. 황지보다 상류에 있는 은대봉의 너덜샘(일명 은대샘)에서 낙동강의 첫 물방울이 시작하기 때문이다. 결국 너덜샘은 발원샘이고, 황지는 발원 연못으로 구분해서 부를 수 있다.

 

 

 

 

 

 



이곳 정상에서 시작되는 금대지맥은 북쪽으로 뻗어가고 대덕산(1307m)의 넓은 초지를 지난다. 약간의 안부인 쑤아발령에 도착하게 되면 크고 오래된 고목이 즐비한 원시림에 도착하게 된다. 우측 아래엔 석회석 동굴로 유명한 용연동굴이 있다. 용연동굴은 3억년 전에서 1억5000만년 전부터 생성된 석회굴이다. 굴 안에는 동굴 산호 군락과 종유석, 석순, 유석 등이 풍부한 큰 광장이 두 개 있고 순환식으로 관람할 수 있는 수평굴이다. 쑤아발령에서 가파른 오르막길을 힘겹게 오르면 비단봉(1279m)이다. 7~8월경에는 각종 야생화가 만발하지만 눈에 쌓인 나뭇가지에는 온통 새하얀 눈꽃뿐이다. 고도를 별로 느끼지 못하는 1260봉을 지나면 우리나라에서 최고로 넓은 고랭지 채소밭(약40만평)이 나타나며, 이곳은 산도 아니고 밭도 아님을 느끼게 된다. 온통 눈 덮인 채소밭 위로는 매봉산(1303m. 천의봉)의 모습이 뚜렷하고 그 아래 마루금엔 풍력발전기 8기 중 2기는 돌지 않고 6기는 상당한 굉음을 내면서 힘차게 돌아가고 있다. 무공해 풍력발전기를 보면서 일본 지진으로 인해 가장 완전하고 경제적이며 편리하다던 원전 사고를 접하며 더 많은 풍력발전이 필요하다고 느낀다. 풍력발전기의 규모에 놀랍고 지금은 비어있는 밭이지만 어마어마하다. 이곳에 뿌려지는 비료의 량이 수백 톤이 된다고 한다. 채소밭 옆으로 포장된 농로로 잠시 가다가 작은 봉우리를 지나면서 백두대간이 풀어 놓은 또하나의 산줄기인 낙동정맥 (1145m)분기점을 만나며, 잠시후에 피재(920m)에 도착한다(12:40).

 

 

 

 

 

 



하늘 아래 첫 도시로 불리는 태백은 백두대간과 낙동정맥, 두 산줄기 품에 폭 안겨 있다. 태백은 1000m가 넘는 산으로 둘러싸인 160리 분지의 고을이다, 영월로 통하는 화방재, 정선가는 피재, 삼척 방향의 느림령, 원덕을 잇는 토산령 등 태백으로 이어지는 고개들은 모두 900m를 넘나든다. 이 정도면 가히 산국(山國)이라 부르는데 부끄럼이 없는 고을이다. 양대 강의 발원지인 검룡소, 황지와 은대샘 이외에도 황지에서 40리쯤 하류에 있는 동점동의 천천(穿川), 즉 '뚜루내'를 보지 않으면 태백을 제대로 알수 없다. '천년병화 불입지지(千年兵禍不入之地)' 라는 태백 160리 분지로 들어서는 관문이기 때문이다. 전해오는 비결문(秘決文)에 의하면 "낙동강 최상류로 올라가면 더 이상 길이 막혀 갈 수 없는 곳에 석벽이 가로 막고 있는데, 석벽 밑에 커다란 석문이 있다. 그 석문은 자시(子時)에 열리고 축시(丑時)에 닫히는데,자시에 열릴때 그 속으로 들어가면 사시사철 꽃이 피고 흉년이 없으며 병화가 침범치 못하고 삼재가 들지 않는 오복동(五福洞)이라는 이상향이 나온다" 고 하였다.

 

 

 

 

 

 



오복동은 바로 우리나라 무릉도원의 상징인 우복동(牛腹洞)인 것이다. 자개문(子開門)은 자시에 열린다는 자시개(子時開)에서 유래했다. 바로 이 자개문이 이상향이자 무릉도원인 태백으로 들어가는 관문이다. 세계에서 그 유래를 찾기 힘들 정도로 기이한 지형을 이루는 이곳은 기암과 폭포가 어우러진 경치 또한 장관이다. 삼형제폭포, 용소, 여울목, 통소(桶沼), 자개문, 마당소, 닭벼슬바위, 일제 강점기 때 뚫어 차와 사람이 드나드는 인공 굴은 8경으로 신비로운 조화를 이룬다. 사방을 에워싼 산세와 물길을 가로 막는 석벽 때문에 천년동안 난리를 한 번도 격지 않았다고 하니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청산별곡󰡑 부르며 머루 다래 따먹고, 산비탈에 불을 놓아 수수 기장 심어먹고, 하늘 보이는 너와집에서 별을 바라보다가 가을이면 모여 태백산에서 천제를 지내던 태평세월을 보냈던 것이다. 태백은 석탄을 빼 놓을 수 없다. 1920년경 장해룡이라는 사람이 금천골 개울가에서 처음 발견하여, 해방이 되고 이 나라가 산업사회로 본격 진입하면서 석탄 개발이 활성화되자 전라, 경상, 충청 할 것 없이 수많은 사람들이 험한 고개를 넘어 왔다. 한때 무려 12만명이 넘는 인구가 흘러들어 왔고, 이들은 함백, 태백, 연화, 백병산 같은 산자락을 파헤치면서 '불을 일으키는 검은 돌' 을 깨내 사람들의 몸을 따뜻하게 녹여 주었다. 석탄 때문에 삼척에서 분리돼 시로 승격 되는 등 태백의 사회․경제사는 석탄을 빼놓고는 이야기할 수 가 없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슬픈 현실이 도사리고 있었으니, 연화산 자락에 세워진 '산업전사위령탑' 이 그 것이다. 그곳에는 광산에서 일하다가 죽어간 수많은 광산노동자들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수십년의 호황기를 지나 1990년대 들어 석탄 합리화 정책으로 대부분의 탄광이 문을 닫았다. 더불어 많은 광부들은 이 태백을 떠나야만 했고, 사택들은 거의 빈집이라 황량한 풍경들이 을씨년스럽다. 지역 활성화 방안으로 내국인 카지노인 강원랜드가 개설 되어 지역 경제에 도움이 된다지만, 수억에서 수십억원을 잃고 패가망신해 폐인이 되는 사람이 수 없이 많다는 보도를 접할 때마다 안타깝기만 하다. 이곳 태백에 사는 사람들은 호랑이가 어딘가에 살고 있다고 믿으며, 요즘도 간혹 그 산군자(山君子)를 목격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호랑이가 많았음을 알려주는 호식총(虎食塚)이 곳곳에 발견되는데 그중 철암동 버들골 깊은 산중의 집채만 한 바윗돌 아래 있는 호식총이 대표적이다.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백두대간을 호령하던 호랑이가 그리워진다.

우리 민족에겐 숲(山)이란 바로 문화였고 생활의 터전이었다. 다시 말해 민둥산은 '산'이라 할 수 없다. 바로 오늘 대간길이 그렇다. 함백산의 정상까지 깎인 도로며, 고랭지 채소밭, 무분별한 임도, 광산개발로 빚어진 막대한 자연 훼손은 아무 말도 없으면서 걸핏하면 대간 종주가 우리 산들을 전부 망가뜨리는 것처럼 하는 것은 종주자의 한사람으로서 정말 억울해서 견딜 수 없는 지경이다. 대간 종주자를 범법자로 몰아 부치면서 갈수 있는 방법은 아예 연구도 해보지 않고 무조건 막고 통제해 버리는 식으로 한다는 것은 국민에 대한 기만이요, 직무 태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각종 공해로 찌든 우리 인간은 자연의 숲이 방패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고마움을 모르고 살아가는 것이다. 만약에 우리주변에 숲(山)이 없다면 불 꺼진 항구요, 오아시스 없는 사막과도 같을 것이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 산을 좋아하는 사람끼리라도 자연을 아끼고 사랑하며 보호하는데 앞장서야겠다. 무성한 숲을 보면 그 나라 그 지방의 생활수준을 알 수 있다 했다. 모든 생물의 어우러짐을 볼 수 있고, 모든 진리가 그 속에 있는 건강한 숲과 조화 있는 숲은 우리 인간에게 아름다움과 살맛나는 세상을 선물해 줄 것이다. '산山'사랑하는 백두대간종주가가 마음 놓고 가고 싶을 때 언제라도 갈 수 있는 그날을 기다려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