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첫 신부 김대건 태어난 신앙의 못자리 솔뫼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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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첫 신부 김대건 태어난 신앙의 못자리 솔뫼성지
  • 한관우·김경미 기자
  • 승인 2014.07.24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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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홍주순교성지 성역화·관광자원화가 ‘답’

 


오는 8월 14일 방한하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가장 중요한 일정과 방문이 바로 충남 내포지역에서 이뤄진다. 교황은 방한 이틀째인 15일 오전 대전월드컵 경기장에서 ‘성모 승천 대축일 미사’를 봉헌한 뒤 오후에는 성 김대건 신부의 생가 터인 솔뫼성지를 방문해 아시아 청년대회 참가자들에게 연설을 할 예정이다.
당진시 우강면 송산리(당시는 면천고을)에 있는 솔뫼성지는 드넓은 당진평야를 안고 있으며, 소나무가 빽빽하게 숲을 이루고 있다. 솔뫼성지는 한국인 최초의 신부이며 피의 순교자인 김대건이 유년시절을 보낸 곳으로 더욱 유명하다. 김대건의 집안은 4대가 천주교를 믿어오다가 박해를 받아 모든 것을 잃었다.

천주교와 충남도는 그의 순교와 상징성을 받들어 생가를 복원해놓고 기념관을 짓는 등 각고의 노력을 보이고 있다. 솔뫼성지는 한국 첫 신부인 김대건 안드레아가 1821년 태어나 일곱 살 되던 해 박해를 피해 경기도 용인시 한덕동으로 이사할 때까지 머물던 곳이다. 솔뫼는 소나무 산(松山)이라는 뜻의 순 우리말이다. 김대건 신부의 증조부 김진후(1814년 해미에서 순교), 작은 할아버지 김종한(1816년 대구 관덕정에서 순교), 아버지 김제준(1839년 서울 서소문 밖에서 순교), 김대건(1846년 서울 한강 새남터에서 순교) 신부 등 4대의 순교자가 이곳에 살았다. 김 신부의 신앙과 삶의 지표가 싹튼 장소로 ‘한국의 베들레헴’이라 불린다.

1906년 당시 합덕성당의 크램프 신부가 김대건 신부의 순교 60주년을 맞아 김 신부의 생가터를 고증했고, 1946년 순교 100주년을 맞아 순교기념비를 세우면서 성지로 조성됐다. 1973년 솔뫼성지 성역화 사업을 시작했고 1982년에는 ‘피정의 집’을 건립해 ‘순교자 신앙의 학교’로 만들었다. 2004년 김 신부의 생가가 복원되고 이듬해에는 기념관과 성당이 조성되면서 성역화 작업이 마무리됐다. 이곳 솔뫼성지에서는 오는 8월 제6회 아시아청년대회 개막미사가 열리며, 프란치스코 교황과 청년들 간 2시간 가량의 만남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 때문에 성지 주변의 도로포장 등 단장을 위한 공사가 한창이다.

솔뫼성지성당에 들어서면 성당 외벽에 프란치스코 교황의 사진을 인쇄한 대형 현수막을 볼 수 있다. 당진시 문화관광과 문화재팀 관계자에 따르면 교황 방문 소식이후 하루 200명이상 솔뫼성지를 찾고 있다고 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6000명을 수용하는 대형 천막구조물에서 청년들과 만날 예정이다. 당진시는 이를 위해 성지주변의 논을 매입해 프란치스코 교황과 청년대회 참석자들간의 대화장소로 대형 텐트형 구조물을 만들었다. 특히 외국인과 외신기자들을 위한 통번역 지원과 무더위를 해소할 수 있는 대책 등에 대해서도 차질 없이 준비하고 있으며, 국내외 취재기자 등을 위한 프레스센터도 성당의 식당 등을 활용해 만들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 당진시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솔뫼성지 방문을 기념하기 위해 지역 특산품인 해나루쌀의 포장 디자인을 새롭게 개발한 제품을 판매한다고 밝혔다. 특히 충남도는 교황 방문지 인근인 서산시 해미면과 당진시 합덕읍·우강면 주민자치위원회 등 3개 읍·면 5개 주민단체가 협약을 맺어 방문 준비에 협력해 나아가기로 했다고 밝혔다. 솔뫼성지에는 김대건 동상, 기념성당과 기념관, 솔뫼아레나(야외 문화공간) 등이 조성돼 있다. 솔뫼성지성당 남기은 문화관광 해설사의 설명에 따르면 “솔뫼성당은 김대건이 중국 상하이에서 사제품을 받고 귀국할 때 타고 온 라파엘호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형상화했다”며 “침몰 위험을 안고 떠난 일엽편주가 폭풍우에 돛이 찢기고 키가 부러졌지만 무사히 돌아왔듯이 한국천주교도 모진 박해를 이겨내고 성장했음을 뜻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라파엘호는 원래 바다가 아니라 강에서 운행하도록 만들어진 작은 돛단배였다. 외관은 순교자를 상징하는 붉은 색 소재를 사용했으며, 성당 가운데로 난 큰 길은 김대건 신부의 세계를 향한 드넓은 기개를 나타낸다. 아레나는 모래를 깔아놓은 로마의 원형극장을 말하는데, 솔뫼아레나는 김대건 신부와 동료들이 병오박해(1846년) 때 새남터 모래사장에서 순교한 것을 기념해 조성했다는 설명이다. 솔뫼아레나 주변으로 12사도상이 세워져 있어 웅장한 느낌을 준다”고 설명했다. 기념관에는 김대건 신부의 친필 서한과 일기, 그가 그린 조선전도, 초상화 등이 전시돼 있다.

22편의 서한과 비망록은 순교자 79위의 귀중한 시복 자료가 됐다고 한다. 서한은 라틴어로 돼 있으며, 훈춘에서 쓴 일기는 중국어로 돼 있는데 둘 다 작은 글씨로 지면을 여백 없이 빼곡하게 메운 것이 인상적이다. 남기은 해설사에 의하면 “김대건은 영어, 프랑스어 등 5개 국어 이상 구사한 것으로 알려진다. 김대건이 1845년에 직접 그린 조선전도는 프랑스 지리학회를 통해 조선을 알리는 계기가 됐다. 초상화는 연대별로 5개가량이 전해지는데, 갈수록 젊고 미남으로 그려졌다”는 설명이다.

솔뫼성지성당 이용호 주임신부는 “김대건 신부는 그리스도교에 담긴 평등과 자유사상의 소유자”라며 “조선후기 최초의 유학생으로 서양을 많이 알았고, 중국을 통해 아시아를 들여다봤으며, 화폐개혁까지 생각했다”고 소개했다. 이어 “순교를 각오하고 쓴 그의 마지막 편지에는 자신의 순교에 대해 슬퍼하지 말라고 쓰여져 있는데, 신자들이 수없이 베끼고, 글 모르는 신자들은 외우고 살았다”고 설명했다. 

<이 기획취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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