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감천마을, 역사·문화·주민의 삶이 공존하는 도시재생
상태바
부산감천마을, 역사·문화·주민의 삶이 공존하는 도시재생
  • 서용덕·한기원 기자
  • 승인 2014.09.18 16:3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도시재생사업, 지역의 경쟁력이다 (6)

부산 구도심의 고지대인 산복도로변 서민층 밀집마을을 비롯해 시민들의 애환이 서린 영도대교와 남항 일대, 경제성장의 발판이 된 도심 속 철도, 부산의 발전상을 잘 보여주는 해운대 센텀시티와 마린시티의 고층 빌딩 군 등등. 부산에는 격동의 한국 근현대사가 살아 숨 쉬는 역사적 장소나 시설들이 많다.
 

 


그러나 지난 수십 년간 외형적 성장과 난개발로 형성된 부산은 아파트 등 신축건물이 즐비하지만 시민들의 삶이 녹아 있는 문화 콘텐츠는 부족한 삭막한 도시로 변질된 측면이 강하다. 이에 대한 반성으로 최근 몇 년 사이 구도심을 중심으로 역사·문화와 주민들의 삶이 공존하는 ‘도심 재생사업’을 진행하고 있어 관심이 쏠리는 지역이다. 이 사업이 기존 도시정비사업 형태를 벗어나 창조적 재생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예술·문화를 바탕으로 창의적 아이디어를 실현하고 지역주민들이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공동체를 회복하는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부산시 사하구 감천동 감천마을은 6·25한국전쟁 당시 피란민이 모여 형성된 부산의 달동네다. 하지만 경제개발에서 소외되고 사람들이 떠나면서 빈곤층과 노인만 남아 죽어가는 마을로 전락했다. 이 마을을 다시 살리기 위해 부산시는 건물을 부수고 다시 짓는 재건축이나 주변 지역 전체를 신도심으로 만드는 재개발 방식 등 기존에 많이 사용되는 도시개발 대신 새로운 방법을 선택했다.
 

 


바로 기존의 마을에 새로운 색을 입히는 도시재생이 그것이다. 감천문화마을은 국내 및 세계 유명 언론사들의 집중보도 등을 통해 도시재생의 성공적인 대표 사례로 인정받고 있다. 과거 이 마을 주민들은 산복도로 일대 낙후지역에 산다는 이유로 주눅 들어 있었으나 최근 들어선 자신들의 동네를 당당하게 자랑한다는 것이다. 지난해 1년간 감천문화마을을 다녀간 국내·외 방문객은 30만 명을 넘어섰으며, 올해 상반기에만 28만 명의 관광객들이 줄을 잇고 있을 정도로 명소가 됐다.
 

 


황동철 부산시 창조도시기획과장은 “재개발 재건축으로 시행할 경우 지역의 소중한 자산과 공동체가 소멸하기 때문에 이 사업으로 시행하게 됐다”며 “도시재생은 기본적으로 지역자치단체가 중심이 돼 진행한다. 재개발 재건축보다 예산이 적게 들고 지역 주민의 호응이 높다는 장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감천문화마을 주민들과 예술가들은 그동안 문화·예술을 동네 곳곳에 녹여내면서 그동안 단절된 신뢰를 회복해 성공의 기반을 다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마을 주민들은 마을협의회를 기반으로 활발한 문화·예술활동을 통해 마을의 역사성과 지역의 특수성을 살리는 등 창의적 콘텐츠를 만들어내는데 역량을 집중했다. 이처럼 문화·예술은 도시재생과 창조성을 매개한다. 상상력, 창의력, 사람들을 하나로 모으는 응집력 등 문화·예술 활동을 통해 나타나는 많은 장점들은 주민공동체 또는 도시경제의 창조성으로 발현돼 도시재생에 참신함을 더한다는 전문가들의 분석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실례로 부산의 산복도로 르네상스 프로젝트는 부산시가 지난 2011년부터 10년간 1500억 원을 투입해 중구, 동구 등 원도심의 고지대에 개설된 산복도로 일대 9개 구역을 변화시키는 사업이다. 또 낙후지역 재생사업은 아파트단지 건립 등 무분별한 도시개발에 밀려 침체되며 쇠퇴해 온 저소득층 밀집지역의 마을공동체를 보존하면서 적정 규모의 개발을 하는 사업으로 커뮤니티 뉴딜재생사업, 행복마을·희망마을만들기 사업 등이 포함돼 있다.

그러나 현재 부산지역 재생사업은 마을 주민들이 아닌 행정기관 주도형으로 이뤄지면서 마을자치의 핵심 축인 주민들의 공동체 기반이 여전히 허약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또 다른 지적이다. 이처럼 부산시는 지난 2011년부터 2020년까지 동·중·서·사하·부산진·사상구 등 6개 구의 원도심 1044만㎡를 3개 권역 9개 사업구역으로 나눠 옛 건물과 지형을 이용해 활력이 넘치는 마을로 되살리는 ‘산복도로 르네상스’사업을 펼치고 있다.
 

 

특히 사하구 감천동 감천문화마을의 활기차고 다양한 문화·예술활동은 역사성, 지리적 특성, 관광상품 등 지역만이 가진 특성을 문화로 탈바꿈시켜 새롭고 창조적인 재생 콘텐츠를 생산하는 핵심 축으로 자리하고 있다. 여기에 마을의 자원봉사자들의 역할도 큰 몫을 하고 있다. 팔순의 이영근(80·감내2동)감천마을 해설사도 그중 한명이다. 그는 연방 관광객들을 안내하는데 솔선하고 있다.

“천마산과 옥녀봉 사이에 위치한 감천동 달동네는 본래 태극도마을이라 불렸다”며 “한국전쟁 당시 민족종교인 태극도 피란민들이 이곳에 정착하는 바람에 태극도 신앙촌이 형성됐지. 이러한 판잣집들은 1970년대 새마을운동을 거치면서 시멘트로 포장되고 슬레이트 지붕으로 바뀌었어. 물론, 지금도 크기와 골격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밖에도 동구 초량동 부산역 주변을 비롯한 도심 철도 정비, 동·남·부산진구를 흐르는 동천을 중심으로 한 생태하천 조성, 해운대구 일대의 신도심 정비사업, 중·동구 일대 부산항의 북항재개발사업 등 부산시를 중심으로 의욕적으로 추진 중인 다양한 정비사업에 문화·예술이 접목되면 창조적 아이디어를 생산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부산발전연구원 김형균 선임연구위원은 “시민들의 문화·예술활동은 구도심 일대 침체된 마을의 주민들에게 성취감을 부여해 마을 전체의 활력소가 될 수 있다”고 말하고 “이러한 활력소는 재생이 필요한 구도심은 물론 부산 전역의 대형 정비사업들에도 새로운 아이디어를 더할 것이다”고 강조했다.

한편 재건축, 재개발이 아닌 도시재생의 한 사례로 손꼽히는 부산 감천문화마을의 정체성을 지키는 조례가 시행된다. 사하구는 지난 7월 1일부터 감천문화마을 조성 및 공동체 육성 조례 및 시행규칙을 개정해 시행한다. 개정된 조례에 따르면 감천문화마을 내 각종 시설물을 설치하거나 도시계획, 각종 인·허가, 건물철거 등 마을 정체성에 영향을 줄 수 있는 행위는 구청과 업무협의를 해야 한다. 업무협의 역시 구청 독자적으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주민, 활동가, 전문가 등 10인 이내로 구성된 자문위원회를 거치도록 했다.

시행규칙에는 마을 경관과 어울리는 10가지 색상을 지정해 그 범위 안에서 건축물의 디자인이나 색상, 간판을 사용하도록 권고한다. 산비탈에 다닥다닥 붙은 집들과 알록달록 슬레이트지붕으로 독특한 풍광을 자아내는 부산 감천문화마을은 예술인의 작품 설치와 지자체의 지원 아래 도시재생의 대표사례로 주목받고 있다. 사하구 관계자에 따르면 감천문화마을이 유명세를 타다보니 난개발을 막고 정체성을 지킬 필요성이 커져 관련 조례를 개정하게 됐다고 전했다.
 

 


창조적인 도시 재생사업의 목표는 지역 주민들에 의해 지역자치를 실현하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주민들 스스로 지역공동체를 꾸리고 마을을 직접 이끌어가야 한다”고 조언한다. 특히 이 같은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지역민들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에 설득력이 실리는 이유다. 이같이 지역 특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주민들이 마을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참여하면 다양한 경험을 공유하고 축적하며 서로의 신뢰를 쌓을 수 있다.

끈끈한 신뢰로 엮인 공동체는 장기적으로는 도시재생의 최종 목표인 마을의 경제적 자립을 실현할 수 있는 토대가 되기 때문이다. 반면 마을의 주민들 사이에 신뢰가 부족하면 각종 상업시설에서 벌어들이는 수익의 배분을 놓고 갈등이 빚어지면서 결국 공동체 기반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곳곳에서 관(官) 주도로 벌어지고 있는 각종 형태의 도심 정비사업도 다양한 구성원으로 이뤄진 협의체를 통해 역사, 문화, 상징 등 지역성을 잘 녹여내면 기존 파괴와 개발 일변도의 정비사업과 차별화할 수 있다는 목소리가 높은 이유다.

주민 참여와 동시에 부산에서 이뤄지고 있는 다양한 재생사업들이 유기적 네트워크를 구성해 부산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창조적 기반으로 작용해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조언에 귀기울일 필요가 있다. 결론적으로 부산의 도시재생은 부수고 다시 짓는 식의 개발 반대편에 ‘도시재생’이 있다는 점을 눈여겨 볼 일이다. 오래된 건물을 부수지 않고 지역의 역사·문화와 결합시켜 마을을 되살리는 도시재생이 국내외에서 새로운 개발 방식으로 주목받고 있는 점을 도시재생이 절실한 홍성의 원도심 재생에도 꼭 참고해야 할 필수조건이다.

<이 기획취재는 충청남도 지역언론지원 사업의 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관련기사
홍성 원도심공동화 방지 도시재생사업이 답
대전 소제동·서천·장항 원도심 ‘문화혁명’ 도시재생
청주시 도시재생, 쇠퇴상가·건물·주거 활성화 사업 성공
역사·문화·관광, 생태공동체 공간 ‘수원시 도시재생’ 주목
마산 원도심 재생, 문화예술을 입혀 생기 불어넣다
낡은 맥주공장, 박물관·식당 등으로 재생 성공
유리공예로 먹고 사는 일본 홋카이도 오타루 사람들
버려진 창고건물 문화·쇼핑공간으로 재생, 관광객 문전성시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