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의 시민사회단체, 홍성사회 역동적으로 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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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의 시민사회단체, 홍성사회 역동적으로 변모
  • 한관우 발행인
  • 승인 2017.04.20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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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홍주, 지역사를 다시 읽다 <7>

1946년 5월 곽영순, 이한세, 김연수, 김현경 등이 주축으로 ‘대한부인회 홍성군지회’를 결성 한 것이 홍성에서 최초의 여성단체의 조직이었다. 창립 회원은 50여명이었으며 초대 위원장에 곽영순을 선출하고 대한독립촉성국민회와 손을 잡고 경찰의 활동을 돕고 5·10선거에 관여하는 등 친 정부 또는 극우 단체로 활동했다. 이후 여러 여성단체가 결성되면서 1981년에는 ‘홍성군여성단체협의회’가 구성됐으나 홍성의 여성단체들은 목적한 만큼 시민사회적인 활동이 미흡하다는 평이다.

민주화 운동 자료사진

우리나라 군사권위주의 시대에는 민간단체들이 관변단체와 재야단체로 양분돼 있었다. 권위주의시대통치체제는 국민을 통제하고 알 권리를 차단했으며 재정을 통제했다. 관변단체에게는 큰 혜택을 제공하고 재야단체에게는 압박을 가해 건전한 시민단체가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민주화가 진전되면서 특히 1987년 6월 민주화항쟁 이후에는 자발적으로 결성해 때로는 정부의 권력과 맞서 싸우면서 사회운동에 나서는 홍성시민사회의 역사는 사실상 오래된 편이다. 일제시대부터 ‘홍성군지’ 등의 기록을 보면 부보상, 형평사, 무공회, 홍성청년회, 홍성노동조합, 소작인조합, 기자단, 신간회, 유교부식회 등이 있다. 이중에서 무공회가 가장 시민사회에 가까운 단체로 볼 수 있는데, 무공회는 1925년 손재학, 김동진, 김창식, 김성곤, 이벽규, 이두성, 김흥선 등 7명이 결성한 사상적 단체였다. 무공회는 동아일보와 조선일보 지국에 관계하면서 중앙의 새로운 사상에 접하며 지역 청년 지식층의 사상연구단체로 출발했다. 이후 중앙의 사회주의 운동과 관련을 맺고 있던 서울 청년회계의 김재한, 화요계의 김연진, 북풍회계의 방두파 등이 참여하고 지역내 사회주의 세력과 우파계열 사회운동가들이 가세하면서 25명으로 늘어나 무공회는 홍성사회운동의 새로운 구심체로 등장하게 된다. 무공회의 표면적 활동은 월 2회 연구반 집회를 갖는데 그쳤지만 지역사회운동의 이념과 노선 정립, 홍성청년회, 홍성노조, 소작인조합, 신간회, 유교부식회 등을 만드는데 핵심적 역할을 했다.

해방을 전후해 홍성에서 가장 대표적인 단체는 ‘가야동지회’를 들 수 있다. 일제 말 홍성의 청년지식인들은 관솔을 따러 간다는 명목으로 수덕사 뒤 가야산에 비밀리 모여 정세를 토론하는 조직을 만들었는데 ‘가야동지회’라는 이름을 붙였다. 1945년 8월15일 일본 천황의 항복 방송이 전해지면서 이들은 다음날 최명룡과 유승준의 집에서 거듭 회합을 갖고 대책을 협의, 18일 홍성국민학교 교정에서 군민 해방 축하식을 열었으며, 행사를 마치고 서문감리교회에 모여 ‘홍성군자치위원회’를 결성하였다. 자치위원회는 건국준비위원회로 발전하는 등 해방 직후 홍성지역의 정치 사회적 중심축으로 활동했다.

한편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에 홍성의 청년단체에도 변화가 있었는데, 이승만은 이범석의 민족청년단의 세력을 약화시키기 위해 기존의 단체를 모두 해산하고 대한청년단으로 통합 하도록 지시했다. 이에 홍성의 대동청년단도 일시 해산하고 다시 중앙에서 대한청년단이 발족한 이후 그 지단으로 재출발 하였다. 단장은 주승진, 부단장은 곽무종, 신봉철 등 이었다.

아시아반공민주화.

■해방 이후 1969년 홍성YMCA창립
홍성의 청년사회단체는 1925년 25명의 청년 지식인 중심의 사상연구단체인 ‘무공회’ 결성을 시작으로 1926년 홍성청년회, 1927년 광천청년회, 홍성노동조합 결성, 신간회 홍성지회 창립. 1940년 가야동지회 결성. 1945년 홍성군자치위원회 결성 후 건국준비위원회로 전환, 인민위원회 조직. 1946년 대한협찬회 결성, 대한부인회 홍성군지회 결성됐고, 1954년 6월 15일 아시아민주반공연맹이 창설됐으며, 1955년 12월 4일 한국아시아반공연맹을 설립됐다. 1961년 반공활동을 강화하기 위해 반공연맹의 법제화가 추진됐다. 1963년 9월 6일 국무회의의 의결을 거쳐 국가재건회의에서 법률이 공포됐다. 1964년 1월 1일 동법시행으로 홍성에 반공연맹지부가 설치됐다.

해방 이후 홍성사회에는 크고 작은 시민운동단체들이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거듭하다가 1969년 10월 5일 홍성남산교회에서 지역인사 24명이 ‘홍성YMCA창립 발기인대회’를 열었다. 그해 10월 14일 홍성읍 무궁화예식장에서 68명이 참석한 가운데 ‘홍성YMCA 창립총회’를 열고 초대 이사장에 조청기 목사, 총무에 양만형을 선출했다. 이후 홍성YMCA는 홍성의 현대사에 새로운 역할을 부여 받으며, 1970~80년대 군사정권의 철권정치가 기승을 부리면서 전국의 시민사회단체들의 항거로 민주화운동이 불길처럼 번지던 때, 전국 최초의 군 단위 자생 농민회, 전교조 등을 탄생 시키는 산파역할을 담당했다. ‘홍성군농민회’는 서부면과 갈산면 농민들의 토지 싸움에서부터 시작해, 1983년 서부면, 갈산면 농민 163세대는 현대건설의 AB지구 방조제 공사로 빼앗긴 땅을 되찾기 위해 농민들은 각종 시위, 법적 투쟁 등을 거쳐 1988년 6월 평당 920원의 땅값을 받아냄으로써 전국 간척지 소작민들의 토지 싸움에 용기를 넣어주는 계기를 만들었다. 이후 1987년 9월 11일 홍성읍 원앙예식장에서 ‘홍성군농민회’를 창립했다.

■6월 항쟁 계기로 시민사회운동 확대돼
한편 1984년 YMCA는 ‘중등교육자협의회’를 결성해 비민주적이고 획일적인 입시위주 교육에 따라 나타나는 각종 교육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했다. 1988년 10월 18일에는 102명이 참여한 가운데 ‘홍성군교사협의회’를 창립하고 회장에 윤갑상을 선출, 충남지역 교육민주화운동의 선도적인 역할을 담당하며 이후 ‘전교조홍성군지회’로 발전했다. 이 시기에 홍성YMCA는 지역의 젊은 층을 모아 ‘시민대학’을 설치해 전국적인 민주 인사들을 초청, 시국강연회 등을 열었고, 이들 수료자들은 1988년 5월보다 지속적인 지역민주화운동을 위해 ‘홍성민주시민회’를 결성했다. 또 홍성의료원노동조합이 중심이 된 ‘민주노총 홍성지회’가 만들어지면서 각 분야별 민주화운동세력이 포진했다. 이들 단체들은 1990년 5월12일 ‘홍성민족민주운동협의회’라는 이름으로 연대기구를 만들어 각종 선거에서도 일정 역할을 담당하며 홍성의 정치, 사회운동을 선도했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 군사정권의 철권통치가 서서히 사라지고 문민정부가 들어서고 김대중·노무현 정권으로 교체되면서 조직과 활동이 느슨해지는 경향을 보였다.

1987년 6월 항쟁을 계기로 확대되기 시작한 시민사회운동의 공간은 정치이데올로기 지형의 확장이라는 사회변화와 맞물리면서 한국사회뿐만 아니라 홍성사회를 매우 역동적으로 변모시키는 계기가 됐다. 사회활동이 활발해지면서 사회영역은 정치적으로 활성화 되고, 조직화 됐으며, 시민적 권리도 지속적으로 확장됐다. 홍성의 시민운동도 자발적인 시민운동 조직이 결성돼 비정부기구(NGO)운동이 활성화 된 것은 1980~2000년대의 큰 성과다. 1981년 홍주여객 노동조합 결성, 홍성여성단체협의회 결성. 1987년 홍성농민회와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 홍성군지부 창립. 1988년 홍성민주시민회, 홍주택시노동조합, 홍성의료원노동조합, 홍성직업훈련소노동조합, 홍성지역교사협의회 창립. 1990년 홍성민족민주운동협의회, 홍성군교사협의회 창립. 1991년 홍성민주발전동지회 창립. 2002년 홍성지방자치개혁연대 창립 이후 2004년에는 노무현 정부의 국가균형발전과 자치분권의 정책적 활동에 힘 입어 자발적 시민참여조직으로 ‘자치분권홍성연대’가 창립되어 활동하고 있다. 지난 2005년 11월 홍성진실과화해위원회가 발족했다. 이러한 시민사회의 요구 확대는 정치적으로 민주화의 진전과 제도정착에도 영향을 주었고, 경제적으로는 불평등한 빈부의 해소와 경제정의에도 큰 도움을 줬다.

한편 지난 2012년 12월 충청남도청이 대전시대 80년의 역사를 마감하고 홍성·예산으로 이전하여 홍성시대를 맞으면서 환경문제의 중요성이 초미의 관심사로 등장했다. 이러한 시대적 흐름에 맞춰 예산홍성환경운동연합(공동의장 전병성, 고광성, 조성미)이 2015년 7월 11일 창립대회를 갖고 정식으로 출범했다. 창립총회에서 ‘창립선언문’을 채택한 예산홍성환경운동연합은 앞으로 충남도청 내포신도시 집단에너지시설과 예산군 대술면 궐곡리 폐기물매립장, 예산군 삽교읍 상하리 레미콘공장 등 지역의 환경현안에 대한 연대활동을 비롯해 찾아가는 에너지교실, 마을환경 규약 만들기, 생태지도 제작 등의 사업을 펼친다는 계획으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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