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항선 홍성~보령, 석면광산 터널통과 ‘갈등 첨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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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항선 홍성~보령, 석면광산 터널통과 ‘갈등 첨예’
  • 취재=한기원/사진=김경미 기자
  • 승인 2017.08.31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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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시대 아시아 최대 석면광산 충남, 안전지대일까? 〈4〉
장항선 개량 2단계 구간인 홍성 신성~광천역 구간의 폐석면광산과 장항선 기본계획 및 실시설계 노선도.
장항선 개량 2단계 구간인 홍성 신성~광천역 구간의 폐석면광산과 장항선 기본계획 및 실시설계 노선도.

장항선 개량 2단계 홍성구간 노선을 둘러싼 갈등이 5년째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고 있다. 석면광산을 통과하는 실시설계 노선에 반대하며 기본계획 노선 추진을 요구하는 주민들과 경제적 파급효과를 이유로 실시설계 안에 찬성하는 주민 간 갈등이 첨예한 상황이다. 

홍성군은 홍성구간 기본계획안과 실시설계안 찬반 갈등을 두고 몇 차례 주민설명회와 간담회를 개최했지만 합의도출에는 성과를 보지 못하면서 내홍이 이어지고 있다. 주민들은 철도노선이 석면광산을 터널로 통과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1급 발암물질인 석면이 흩날릴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장항선 개량 2단계 건설사업과 관련한 실시계획에는 홍성역에서 광천역으로 향하는 예정 노선에 과거 석면을 캤던 대흥광산(광천읍 신진리 산 1-1번지 일원)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에 이 노선을 고수할 경우 석면광산을 지나는 구간은 터널로 공사를 해야 하는 상황이어서 석면에 대한 위험성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이 광산은 1985년 12월 폐광될 때까지 150여 톤의 석면이 채굴된 곳으로 지난 2013년 8월 환경부가 한 정밀조사 결과에서도 석면이 검출됐다.

당시 대흥광산에서 채취한 토양시료를 분석한 결과 1∼3% 이상의 오염이 확인돼 토양정화가 필요한 것으로 조사됐기 때문이다. 석면 오염이 1% 이상이면 정화대상으로 우선 분류된다. 대흥광산 주변에는 석면을 함유한 암석 일부가 노출돼 있고, 폐(광)석들도 산재해 있는 상황이다. 공사가 계획대로 진행되면 땅속에 있는 석면이 대기 중으로 비산할 수 있고, 열차가 운행되더라도 진동에 따른 석면류 물질의 비산 가능성이 있어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한 곳이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광천읍 주민들과 홍성군, 충남도는 지난 2013년 11월 국토교통부 등에 ‘석면 피해가 없도록 철도노선 공사가 이뤄져야 한다’는 내용의 의견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당시 주민들은 광천읍개량사업 석면피해주민대책위 이름으로 ‘석면피해가 우려되는 지역에 철도노선이 만들어져서는 안 된다. 철도노선이 석면광산을 우회해야 한다’는 내용의 주민 1673명의 서명이 담긴 진정서를 국토교통부와 청와대 민정수석실, 국무총리실 등에 보내기도 했다.
 

광천역’이 어느 곳에 들어서느냐에 따라 노선이 바뀌는 상황
국토교통부·철도시설공단 노선 변경안 제시… 주민들은 반발
대책위, “석면광산 뚫고 철도공사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
석면규제 처음 시행 1931년 영국…
 우리나라는 2009년 금지

■장항선 개량 2단계 사업 노선 두고 갈등
장항선 개량 2단계 사업은 국토교통부와 철도시설공단이 총사업비 9106억 원을 들여 2020년 완공을 목표로 홍성 신성~보령 주포 18㎞ 구간과 보령 남포~간치 14.4㎞구간을 직선화하는 사업이다. 철도시설공단은 2011년 광천역을 홍성군 광천읍 상정리 홍주미트 앞으로 옮기고 노선은 벽계마을~홍주미트~포항마을을 잇는 내용의 기본계획안을 발표했다. 이후 2013년 광천역을 신진리 광신철재 뒤편으로 옮기고 노선을 직선화해 최단거리로 추진하는 실시설계 안을 발표했다. 

하지만 실시설계안의 노선이 과거에 석면을 채굴했던 대흥광산을 지난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광천읍 주민들은 기본계획대로 사업을 추진하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는 상황이다. 결국 광천역이 어디에 들어서느냐에 따라 노선이 바뀌는 것이기 때문이다. 국토교통부는 지난 2010년 홍주미트 인근으로 광천역을 옮기는 기본계획을 발표해 주민 동의를 얻었지만, 철도시설공단은 2012년 광천역을 광천읍 신진리 광신철재 인근으로 옮기는 노선 변경 안을 제시하면서 주민들이 반발하고 있는 것이다.

장항선 홍성구간 개량사업과 관련한 주민들의 갈등의 핵심은 지난 2012년 말 한국철도시설공단측이 기존에 공개한 벽계마을~벽계마을 아파트~상정마을 뜰~홍주미트 앞(광천역)~포항마을을 지나는 기본설계노선(이하 1안)과 달리 실시설계노선(이하 2안)에서는 그림이 있는 정원~별식품~광신철재 뒤(광천역)~길주유소 사거리~홍주미트 앞~장척마을을 지나는 노선으로 변경되면서 주민들 간의 갈등이 본격적으로 촉발됐다. 특히 지난 2013년 말에는 2안의 경우 폐석면광산을 통과하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주민들의 반발을 불러온 요인으로 작용했다. 이후 5년간 1안과 2안으로 주민들의 여론이 나뉘며 주민간 갈등의 골만 깊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철도대책위 박상훈 위원은 “석면광산을 뚫고 절개해 철도 공사를 하는 것은 말도 안 된다”며 2안을 비판하면서도 주민여론 수렴을 위해 주민투표의 필요성을 제기하기도 했다. “1안과 2안 중 선택을 못 하겠다면 홍성군이 공정하게 주관하는 주민투표를 통해 노선을 결정하자”고 주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2안을 지지하는 주민들은 주민투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반발하면서 지금까지 해결점을 찾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당시 2안을 지지한 한상봉 씨는 “기본설계안 이후 각계 전문가와 관계기관들이 협의를 거치고 1안과 2안을 각각 지지하는 주민들의 민원을 수렴해 정한 노선인데 이제 와서 다 엎고 처음부터 논의하자는 격”이라며 반대했다. “장항선개량2단계사업은 주민투표 대상에 맞지 않고 투표를 개최한다면 불참할 것”이라고 말하는 등 갈등의 골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와 관련 철도시설공단의 실시 설계안에 반대하는 주민들은 “변경 노선이 석면광산을 통과해 광천 전체를 발암 물질인 석면 투성이로 덮을 것”이라며 격렬하게 반대하고 있는 실정이다.

주민대책위(위원장 장석순)는 “변경된 노선대로 공사가 강행되면 석면광산을 터널로 뚫어야 하므로 주민들의 피해는 불 보듯 뻔하다”며 “석면 환자들을 외면한 채 경제적 손익만 따지면 안 된다”고 강조하고 있다.

장항선 2단계 개량사업의 노선 변경을 반대하는 광천읍 주민대책위(위원장 장석순)와 국토교통부 관계자들의 간담회가 지난 5월 22일 광천터미널 인근 대책위 사무실에서 열렸다. 이날 간담회에 참석한 국토교통부 임종일 철도건설과장을 비롯해 충남도, 홍성군 관계자 등 간담회 참석자들은 철도 건설 예정지를 답사했으며, 석면 피해자들을 만나보면서 “석면 피해의 심각성에 대해 공감한다”는 의견을 피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장항선 2단계 계량사업 노선안.
장항선 2단계 계량사업 노선안.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 석면 채광 시작
우리나라는 1930년대부터 석면이 사용됐다고 한다. 석면은 주로 수입에 의존했으나,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 채광을 시작해 1983년 폐광할 때까지 홍성군 광천읍의 광천광산 등 다수의 석면광산이 홍성을 비롯한 충남지역에 존재했다. 광천광산의 경우 해방 직전에는 종업원 수가 1100명이 넘을 정도로 많이 채광했다고 한다. 

특히 1970년대에는 새마을운동으로 석면이 함유된 슬레이트 지붕개량 사업도 많이 이루어졌다. 국내에서 생산되는 석면은 재질이 좋지 않아 많은 량이 수입됐는데, 수입석면 중 80%는 슬레이트, 천정재나 벽면재로 쓰이는 석면보드, 보온 단열재, 방열, 방화 등에 쓰이는 석면압축판 및 석면시멘트관 등 건축자재의 원료로 쓰였다. 나머지는 석면섬유사, 석면천이나 석면장갑 등 방직업에 쓰이기도 했다.

석면 규제가 처음 시작된 것은 1931년 영국에서다. 그러나 본격적 규제는 1970년대에 들어 미국, 스웨덴, 일본 등에서 석면분사재, 단열재, 청석면 수입 등을 금지하면서 시작됐다. 1985년에는 EC에서 모든 석면분사제 등 6개 품목의 사용을 금지하고, 2000년대에는 EU 25개국을 포함한 미국, 일본, 호주 등 주요 국가에서 원칙적으로 사용이 금지됐다. 

우리나라는 1997년에 청석면, 갈석면의 제조·수입을 금지한 이후 2009년부터 모든 석면함유제품의 제조는 물론 수입과 사용조차도 금지했다. 석면은 대기 뿐 아니라 토양, 강물 등 자연 상태에서도 존재하기 때문에 정상인들도 호흡에 의해 어느 정도 노출된다. 또한 석면에 노출돼도 10~40년의 잠복기를 거쳐 질환으로 발전하기 때문에 사전에 석면에 노출되지 않도록 예방하고, 이미 질환이 발생한 사람에 대해서는 구제를 하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나라에서도 ‘석면피해구제법’이 공포됨에 따라 2011년 1월 1일부터는 원발성(原發性) 악성중피종, 원발성 폐암, 석면폐 등 석면에 의한 질병으로 인정된 자에 대해서는 의료비 등을 지원하고 있다. 석면질병으로 인정되지는 않으나 중장기적으로 석면질환의 발병가능성이 의심되는 자에 대해서는 석면건강관리수첩을 발급하고 무상으로 정기적인 건강검진을 실시하고 있다. 산업혁명 이후에 기적의 물질로 인정돼 광범위하게 사용된 석면, 이제는 국민의 건강을 위협하는 애물단지가 됐다.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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