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쉬는 장독 2500개, 전통발효식품의 명가 ‘서일농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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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쉬는 장독 2500개, 전통발효식품의 명가 ‘서일농원’
  • 취재=한기원/사진=김경미 기자
  • 승인 2017.10.01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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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발효식품, 농업농촌 신혁신 모델 되다 <2>
서일농원의 상징이 된 2500개의 장독 모습.

서일농원, 2500개의 장독과 소나무가 어우러진 전통식당 ‘솔리’
아름다운 자연경관, 장류연구소, 황토발효숙성실 등 볼거리 풍성
햇콩을 가마솥에 삶아 전통방식으로 발효시켜 만드는 장맛 일품
우리 콩 메주, 3년 된 천일염, 옹기 등 3대째 제조비법 전수 받아


 

경기도 안성시 일죽면 화봉리에 1983년부터 자리하고 있는 서일농원의 탄생은 우연히 시작됐다고 한다. 살다보면 전혀 생각지 않던 길로 들어설 때가 있다. 우연히 시작한 일이 직업이 되고, 사업이 되고, 일가(一家)를 이루게 되는 경우다. 안성 일죽면에 자리 잡은 서일농원 서분례 명인의 지난 30여 년이 그러했다. 가족에게 제대로 만든 된장을 먹일 요량으로 시작한 콩 농사와 장 담그기가 입소문을 타 지금은 2500여개의 장독에 된장과 간장, 고추장과 장아찌가 가득하다.

세월에 익어 가는 장맛을 보느라 본업이었던 여행사 일은 뒷전으로 미룬 지 이미 오래라고 한다. 서일농원 입구에서부터 손님을 맞이하는 백여 년은 족히 넘었을 500여 그루의 노송(老松·소나무)들이 있다. 댐 건설로 수몰 위기에 놓여 있던 조선 소나무들을 서분례 명인이 하나하나 옮겨 심었다고 한다. 휘고 구부러진 모양이 다 제각각이어서 산책하며 감상하는 재미가 제법 쏠쏠하다. 이런 소나무를 이곳에 옮겨 심은 것은 순전히 사라져가는 옛것을 살려내 반석 위에 올려놓는 일을 스스로 자청한 것 자체가 서 명인의 일상사였다고 한다. 중부고속도로를 건설하기 시작할 때 5700평을 구입한 게 시작이라고 한다.

서 원장은 여행사 일로 일본 출장을 자주 갔는데 거기 양로원에 비해 한국은 시설이 너무 열악한 것을 발견하고 직접 내 손으로 복지시설을 만들어보겠다고 마음먹고 안성으로 내려왔다는 설명이다. 이렇게 시작된 서일농원의 지금은 2500여 개의 장독과 소나무가 어울려 있는 찻집이 쉼터로 자리 잡고 있다. 찻집 건너로는 식당 겸 된장, 고추장 등을 판매하는 ‘솔리’가 있다. 솔리라는 이름도 소나무의 또 다른 우리말인 ‘솔’에서 따왔듯이 정겹다. 서일농원은 청국장을 비롯한 전통장, 장아찌, 매실, 각종 발효식품을 연구하며 전통 먹거리를 새롭게 개발하는 산실이다. 농원에 들어서면, 마치 어린 시절 고향집 근처에서 보았던 것들이 모여 있는 듯 장승과 솟대, 무수한 옹기, 이끼 낀 돌담, 원두막 초가지붕 아래 매달린 메주 등이 우리를 반긴다.


 

전통음식 시식장 ‘솔리’.


■소란스럽지 않은 어머니들의 느림의 미학
서일농원은 9만9000여㎡의 면적에 잔디광장, 산책길, 연못, 솔잎카페, 과수원, 원두막, 2500여 개의 장독 등 다양한 볼거리로 영화(식객), TV드라마(KBS, SBS, MBC ‘신들의 만찬’ 촬영지), 아리랑TV, 잡지 등에 자주 보도되면서 안성의 명소로 G20정상회의 답사코스도로도 선정됐다고 전했다. 농원에는 아름다운 자연경관은 물론 장류 연구소, 황토발효 숙성실, 저온보관 시설동, 제품 생산동 등 아기자기한 볼거리가 풍성하다. 더불어 ‘슬로푸드 체험학습장’을 통해 어린이부터 주부에 이르기까지 재미있는 체험을 통해 전통식품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는 곳이다.

청국장·손두부·인절미 만들기, 잔디밭 게임 등은 연중 가능하며, 분기별 다양한 프로그램이 개설돼 4~6월은 장가르기, 고추장담그기, 매실따기 등을 체험할 수 있다. 특히 농원은 입장료가 없어 누구나 산책하듯이 편안하게 쉬었다 갈 수 있는 안방 같은 곳으로 먹을거리 또한 풍부하다. 서일농원의 상징이 된 2500여 개의 장독들이 나란히 놓여 있는 장독대만 봐도 주인장의 부지런함을 엿볼 수 있는 곳이다. 이 많은 장독에서는 발효식품의 백미인 된장, 간장, 청국장과 장아찌가 만들어지고 있다.

서일농원 초입에는 전통음식 시식으로 시작한 전통식당 ‘솔리’는 2년 묵은 김치를 비롯해 각종 장아찌류와 청국장찌개, 된장찌개는 독특한 맛이 있으며, 일체의 감미료나 조미료를 넣지 않아 쉽게 소화·흡수되는 건강식으로 평일에는 200~300여명, 주말에는 500~1000여명이 시식할 정도로 남녀노소 누구나 자주 찾는 곳이라는 설명이다.

이곳 식당에서는 좌정식 자리와 질그릇 식기를 사용한 한식의 전형적인 상차림으로 외국인들도 찾아오는 관광명소로 한식의 세계화를 몸소 느낄 수 있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소나무 솔 자를 따고 마을 리(里)자를 써 소나무 마을인 ‘솔리’는 우리의 전통 옛 맛을 느끼며 구수한 정담을 나눌 수 있도록 내부도 정갈 나게 꾸며 놓은 것이 특징적이다. 그래서인지 서일농원의 음식들은 담백하면서 짜지 않고 재료 본연의 맛이 나는 것이 특징인데, 특히 솔리의 음식재료인 된장, 청국장, 고추장, 간장 등의 장류와 짱아지류, 매실식초, 멸치액젓, 김장김치 등은 직접 재료를 재배하거나 엄선해 만들고 있어 믿을 수 있으며, 그 맛 또한 일품이라는 평이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다’라는 말이 있다. 우리 식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먹거리 재료인 된장, 고추장, 간장, 청국장 같은 전통 장들과 그것들을 보관하던 장독과 장독대를 보면 정겨운 마음이 앞서 온다. 아마도 한국인의 정서 속에 남아있는 옛것에 대한 아련한 추억들과 장독대를 평생 안고 살았던 우리의 어머니들에 대한 그리움이 그 곳에 있기 때문은 아닐까.

소란스럽지 않은 느림의 미학, 어머니의 품속을 파고들 듯 묵언하며 거니는 오솔길, 걷노라면 오감으로 전해지는 향기로움, 맛깔스럽게 익어가며 속삭이는 그네들의 숨소리, 서일농원은 그렇게 다양한 의미로 저마다의 가슴에 고이 담겨지고 있는 듯하다.

 

서일농장 석연정.


■전통식품 명인의 가장 좋은 먹거리 철학
서일농원은 영화나 드라마의 촬영장소로도 유명하다. 이곳 서일농원이 널리 알려진 시기도 ‘식객’과 ‘신들의 만찬’ 등을 통해 2500여개의 항아리 모습이 소개된 이후부터라고 한다. 이렇듯 유명세를 타는 서일농원의 본질은 ‘세상의 밥상 위에 어머니의 그리운 손맛을 올려놓겠다’는 심정으로 시작한 토종 먹거리가 으뜸으로 꼽힌다.

우리나라 최초로 전통식품 명인(대한민국 청국장 명인 제62호)으로 선정된 서일농원 서분례 명인은 오랜 연구 끝에 냄새가 많이 나지 않으면서 맛과 영양이 뛰어난 청국장을 개발해 특허도 받았다. 여기에 햇콩을 가마솥에 삶아 전통방식으로 발효시켜 만들어 요즘의 기계화된 시설에서 나오는 청국장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깊은 전통의 맛을 갖추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위해 서일농원에서는 “반드시 국산 메주콩을 가마솥에 삶아 11~12월에 메주를 만든다. 메주는 지붕이 있고 통풍이 잘 되는 곳에서 말린다. 숙성기간 2년 동안 콩물을 보충하고 불순물을 제거한다. 또 소홀히 할 수 없는 게 소금인데, 농원에선 반드시 전남 신안의 비금도 천일염을 3년간 묵혔다가 간수를 뺀 뒤 사용한다”는 것이 서분례 명인의 설명이다. 인공감미료 등 식품첨가물을 쓰지 않는 것은 물론이다. 이러한 원칙을 세우기까지에는 콩 80가마 분량의 된장을 모두 땅에 묻는 등 시행착오도 필요했다고 회상한다.

서 명인은 “서일농원의 장류는 전통의 방법에 의해 과학적인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엄격하고 깔끔함을 고집하며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근처 농가에서 직접 재배한 우리 콩으로 메주를 쑤고, 3년 동안 감수를 뺀 천일염에 농원에 있는 암반수에서 길어 올린 물로 온습도를 저절로 조절하는 전라도지방의 옹기에 모든 정성과 전통이 어우러지는 장맛을 만들어냅니다”라며 “그립기만 한 어머니의 손맛을 세상 사람들과 나누고자 한다”고 강조했다.

 

메주를 건조시키는 모습.


사실 서일농원의 장맛에 특별한 비결이 있는 것은 아니다. 좋은 재료를 써서 전통방식으로 정성을 담아 만드는 것이 전부다. 콩·소금·옹기·물, 어느 하나 소홀해서는 제대로 된 맛을 낼 수 없다. 서일농원의 장류는 대량 생산해내는 ‘공장제품’이 아니다. 옛날식으로 햇콩을 삶고 다져서 메주를 빚고, 그 메주를 띄워서 장을 담그기 때문에 장맛이 살아있다. 특히 일죽면 일대는 한강수계보호지역이어서 오염원이 없는 청정지역으로 유명하다. 더구나 서일농원은 수질이 뛰어난 지하 300m 암반수를 이용해 전통방법으로 위생적인 명품만을 생산하고 있어 인기를 더하는 이유다.

명인 서분례 원장과 가족들은 조선시대 ‘증보산림경제’의 ‘수시장법’에 수록된 방법에 가깝게 제조한 청국장을 친정할머니로부터 3대 째 제조비법을 전수받았다고 한다. 이런 연유와 비법은 서일농원의 장독대가 빽빽이 차는 동안 유일하게 변하지 않은 것은 장맛이다. 그도 그럴 것이 원료인 콩과 고추를 고르는 기준이 예나 지금이나 같고, 메주를 띄우고 장을 담그는 방식 또한 전통을 그대로 따르기에 달라질리 만무한 일이다.

우리 것을 지켜 가면 그것이 가장 좋은 먹거리라는 철학은 변함이 없다. 최근에는 웰빙이다, 슬로우푸드다 해서 찾고들 있지만, 중요한 것은 우리가 옛날부터 먹어 온 게 바로 최고의 건강식이라는 진리는 변함이 없다. 예로부터 장맛은 그 집안의 음식솜씨를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잣대였다. 장독대를 날마다 닦아 바람이 잘 스미도록 했고, 뚜껑 여닫기를 반복하며 볕이 잘 들도록 하는 등 오랜시간 자연을 담고 손맛을 얹어야 완성되는 장(醬)맛. 장맛이 바뀌면 집안이 망할 징조라는 옛 선조들의 지혜와 정성이 곧 어머니의 손맛이다. 명인 서분례 원장의 고집스러운 손맛은 딸 최소영 실장에게 전수되고 있다.

<이 기획기사는 2017년 충청남도지역언론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아 취재·보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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