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향한 오롯한 기개-장부출가생불환(丈夫出家生不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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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향한 오롯한 기개-장부출가생불환(丈夫出家生不還)
  • 한관우·한기원 기자
  • 승인 2015.11.17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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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국항쟁의 진원지를 찾는 역사기행 <15>

충청 독립운동가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다

 

1932년 12월 19일 일본 가나자와에서 총살, 24년 6월의 짧은 생
암장지, 1992년 12월 19일 재일동포들 비석 세워 추모 공간 꾸며
3단 구멍벽돌로 바친 암장지 국화 몇 송이 태극기만 걸린 채 쓸쓸
양심 있는 재일동포들 ‘윤 의사 암장지적보존회’ 만들어 관리 앞장

매헌 윤봉길 의사는 1930년 “장부가 뜻을 품고 집을 나서면 살아 돌아오지 않는다(장부출가생불환, 丈夫出家生不還)”이란 글귀를 남기고 예산군 덕산면 시량리 집을 떠나 독립운동을 위해 중국으로 건너갔다. 1932년 4월 29일 상해 홍구공원에서 폭탄을 투척한 후 체포돼, 곧바로 헌병으로 넘겨지면서 가혹한 심문과 고문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1932년 5월 28일 상해파견 일본군법회의에서 사형을 선고 받고, 1932년 11월 18일 일본 오사카로 후송되어 20일 오사카 육군형무소에 수감되었다. 이후 1932년 12월 18일 가나자와 육군구금소로 이감되었고, 다음날인 12월 19일, 일본군에 의해 가나자와에서 총살당했다.

1932년 12월 19일 새벽 7시 27분 일본 이시카와(石川)현 가나자와(金澤)시 미쓰코지야마 서북골짜기에서 형틀에 묶인 윤봉길은 미간에 총알을 맞고 13분 뒤에 숨졌다고 한다. 시신은 아무렇게나 수습돼 가나자와 노다산(野田) 공동묘지 관리소로 가는 길 밑에 표식도 없이 매장되었다. 사형 집행 전에 미리 파 놓은 2미터 깊이의 구덩이에 시신을 봉분도 없이 평평하게 묻어 사람들이 밟고 지나가도록 했다는 것. 윤봉길 의사가 수뇌부를 섬멸시킨데 대한 일제 군부의 복수였다. 당시 김구는 일본에 있던 박열에게 3의사(윤봉길, 이봉창, 백정기)의 유해 발굴을 부탁했다. 유해봉안추진위원장을 맡은 박열은 재일동포들과 헌신적인 노력으로 1946년 3월 6일 사형장에서 남쪽으로 3㎞ 떨어진 가나자와시 노다산 시영공동묘지 북측 통행로에서 윤봉길의 유해를 발굴했다. 같은 해 6월 16일 서울에 도착한 유해는 6월 30일 국민장으로 효창공원에 안장됐다.

2012년에는 윤봉길의 일본 순국기념비에 말뚝 테러 사건이 벌어졌다고 전해진다. 일본 이시카와현 가나자와시는 일본의 3대 정원 중 하나로 꼽히는 ‘겐로쿠엔’이 있는 관광지다. 하지만 한국에는 매헌 윤봉길 의사(1908~32)의 암장지가 있는 곳으로 더 많이 알려졌다. 윤 의사는 1932년 4월 29일 중국 상하이 홍구공원에서 일본군 수뇌부를 향해 폭탄을 투척하고 현장에서 연행된 이후 8개월만인 12월 19일 가나자와 인근 골짜기에서 총살당했다. 24년 6개월의 짧은 생이었다.

윤봉길 의사 암장지는 가나자와 남동쪽 노다야마 묘지 한편에 자리 잡고 있었다. 묘지를 알리는 입구에는 보일 듯 말 듯 작은 두 뼘 정도의 작은 표지판이 600m가량 올라가야한다는 암장지 방향을 가리키고 있을 뿐이다. 옆의 사찰 표지판에 비하면 정말로 보잘 것 없는 초라한 표지판이다. 윤 의사의 유해가 묻혔던 암장지에는 꽃과 태극기로 둘러싸여 있었다. 독립운동을 하기 위해 길을 떠나면서 남긴 ‘장부출가생불환(丈夫出家生不還)’이란 글귀가 새겨진 비석이 반듯하게 서 있었다. 암장지에서 200m쯤 떨어진 곳에는 1992년 세운 순국기념비도 자리 잡고 있다. 비석에는 윤 의사의 생애가 상세히 적혀 있다.

지난 8월 광복 70주년을 맞아 윤봉길 의사가 묻혀 있던 가나자와시 외곽 노다(野田)산 기슭의 ‘이시카와현 전몰자 묘원’을 찾았던 현장의 모습이 그랬다. 이 묘원은 러일전쟁 때부터 천황을 위해 싸우다 전사한 일본 군인들을 기리는 이시카와현의 공식 추모시설이다. 묘원 입구에 윤 의사 추모 모임이 설치한 ‘윤의사 유시비·암장적비(尹義士 遺詩碑ㆍ暗葬跡碑)’라고 적힌 표지판을 따라 100m쯤 걸어가면, 일본군 전사자 추도시설이 세워진 묘역으로 들어서는 비탈진 통행로에 이른다. 이 통행로 좌측으로 겨우 사람 혼자서 걸을 수 있는 소로를 따라 들어가면 윤 의사의 암장지와 마주하게 된다. 1932년 12월 19일 오전 7시 40분 절명한 윤 의사는 1946년 3월 유해가 수습될 때까지 13년이 넘는 긴 세월 동안 아무도 돌보지 않는 이 통행로 한 구석에서 비바람과 이슬을 맞으며 방치되다시피 했던 것이다.

조국으로 유해가 송환된 뒤 오랫동안 방치돼 있던 윤봉길 의사 암장지는 순국 60주년이던 지난 1992년 12월 19일 윤 의사를 기리는 재일동포들이 뜻을 모아 비석을 세우면서 추모 공간으로 꾸며졌다고 한다. 윤 의사가 독립운동을 위해 중국으로 떠나기 전 가족에게 남긴 말 ‘장부출가생불환(丈夫出家生不還)’이 새겨진 작은 비석과 그 옆에 놓인 국화 몇 송이가 태극기와 함께 암장지를 지키고 있을 뿐이다. 암장지를 받치고 있는 3단 구멍벽돌은 초라하다 못해 유해가 되어서야 고국으로 돌아간 망국 청년 윤봉길의 비애를 새삼 느끼게 하고 있다.

윤 의사 유해 발굴 당시 중학생이었던 김병권(85) 윤봉길의사암매장지적보존회 사무국장은 당시 상황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가나자와의 조선인 청년 수십 명이 묘원 인근을 파헤쳤지만 암장지를 찾지 못했는데, 암장 당시 독경했던 여승을 수소문한 끝에 겨우 찾아 유골을 수습할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윤봉길 의사 암장지는 유해 발굴 전까지 묘원을 찾는 사람들이 밟고 지나다니는 통행로였다”며 “유해 수습 당시 길바닥에 윤 의사가 묻혀 있었다는데 분을 이기지 못한 조선인 청년들이 큰소리로 통곡하던 모습은 지금도 생생하다”고 전했다. 김 국장은 일본군 전몰자 묘역에서 비석 하나를 가리키는데 ‘상하이사건 전몰자 합장비’다. 상하이사건은 일본군이 1932년 1월 상하이를 침공한 사건이고, 이 비석 건립 시기는 1932년 12월, 윤 의사가 순국한 달이다. 비석을 세운 이는 윤 의사의 의거 당시 발가락 5개를 잃은 우에다 겐키치(直田兼吉) 당시 일본군 9사단장이라고 한다.

김 국장은 “윤 의사 암장지 옆에 이 비를 세운 것은 윤 의사에 대한 우에다의 반감이 얼마나 강했는지를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인근에는 러일전쟁 때 포로로 끌려왔다 숨진 러시아 군인들을 위령하는 비석들도 세워져 있다. “교전국 군인들의 추모비까지 세워주면서 봉분도 묘표(墓標)도 없이 윤 의사를 길가에 묻은 일본의 처사를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떨린다”고 말했다. 윤 의사 암장지에서 10m 언덕 위에는 일본 육군묘지관리소가 자리 잡고 있다. 이 묘지는 정부의 지원을 받아 주변 경관이 수려하지만 윤 의사 암장지적비는 아주 좁은 공간에 자리 잡고 있어 안타까움이 더했다.

김 국장은 긴 숨을 내쉬면서 “윤봉길 의사의 일본 가나자와 암장지를 17년가량 직접 관리하면서 부정기 간행물 ‘겨레통신’의 발행을 통해 매헌 정신을 널리 확산시키는 등 일본 현지에서 윤봉길 의사 선양사업에 앞장서던 박인조(朴仁祚) 선생은 지난 2009년 10월 9일 83세의 일기로 별세했다”고 전했다. 그는 “박인조 선생은 평소 일본군이 윤 의사를 처형한 뒤 윤 의사의 사체를 쓰레기하치장 옆 통로에 암매장해 짓밟고 다닌 일본군의 반인륜적인 만행을 후세에 알려야한다”며 “가나자와 재일동포와 양심 있는 일본인들에게 호소해 온 대표적인 항일 인사였다”고 소개하고 “지난 1992년 12월 19일엔 윤 의사의 암장지 터에 윤 의사 묘비를 건립하는 한편, 이를 제대로 관리하기 위해 ‘윤 의사 암장지적 보존회’를 만들어 묘비 주변을 매일 청소한 일화로도 유명한 인물”이라고 추억하며 아쉬움을 전했다.

다만 일본윤봉길의사헌양회 박인조 사무국장에게 2003년 4월 29일 박종순 예산군수가 준 감사패, 2007년 12월 사단법인 윤봉길의사기념사업회 이명박 회장의 공로패와 함께 ‘겨레의 인물 윤봉길 의사’라 적힌 사진 한 장이 보관돼 있다. 초라한 3단 구멍벽돌 위에 잠든 윤 의사의 혼을, 국화 몇 송이와 흩날리는 태극기만이 쓸쓸히 암장지를 지키고 있었다. 우리에게 많은 생각을 남기게 하는 현장임에 틀림없다.
글=한관우/자료·사진=한기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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