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주지명 되찾기 주민홍보·논리개발·전략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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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주지명 되찾기 주민홍보·논리개발·전략이 필요하다
  • <특별취재팀>
  • 승인 2015.11.19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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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의 옛 고유지명‘홍주’를 함께 찾아요 ⑭

 

창지개명(創地改名)은 일제 강점기 창씨개명(創氏)과 같은 맥락
‘홍주’지명 1941년 홍주면이 홍성읍으로 승격하면서 종적 감춰
행정중추도시 과거 홍주목의 영광과 번영재현에 기본적인 목적
군차원의 지명변경 필요성 홍보, 여론수렴과 주민들 설득 필요

광복 70주년을 맞았지만 아직도 일제 때의 지명이 전국 곳곳에 남아 있다. 일제는 당시 행정 편의라는 이유로 우리말 고유 지명을 전부 한자로 바꿨으나, 그것이 자기네 통치 행위의 편리성을 위한 것인데다 민족혼을 말살하려는 속셈까지 더해진 것이어서 광복 이후 정부와 사회단체를 중심으로 옛 지명을 복원하기 위한 노력이 지속돼 오고 있다.

지금도 지방자치단체와 사회단체들이 앞장서 일제 때의 지명을 바꾸기 위한 작업을 계속하고 있지만 전문인력과 당국의 예산 부족, 해당자치단체의 무관심 등으로 성과는 미미한 실정이다. 심지어 수십 년에서 100여 년 동안 익숙해진 일본식 지명을 그대로 쓰자는 주장도 나오고 있어 일제 잔재 청산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일본이 식민지시대에 황국신민화(皇國臣民化) 정책의 하나로 창씨개명(創氏改名)을 단행한 것과 같은 맥락으로 어떤 방법으로라도 땅이름을 퇴색시켜 우리의 민족정신을 말살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일본의 역사왜곡에 격분하기 이전에 일본이 남긴 잔재를 우리 입에 자연스럽게 오르내리고 있음을 부끄러워하고 말끔히 털어내기 위해 모두가 노력해야 하는 이유다. 그러기 위해서는 “체계적으로 차근차근 지명을 고쳐나가야 하는 일이 민과 관이 힘을 합쳐 함께 수반돼야 할 것”이라는 지적이 일고 있는 까닭이기도 하다.

이러한 대표적인 지역으로 꼽히는 곳이 ‘홍성’이다. 과거 전국의 목사고을 중에서 유일하게 본래의 고유지명을 되찾지 못하는 곳, 옛 고유지명인 ‘홍주’를 되찾지 못하고 있는 지역이기도 하다. 지역의 향토사학자들과 주민들 사이에서는 홍성을 홍주라는 옛 지명을 되찾아 바꿔야 한다는 여론이 사실상 높다. 하지만 자치단체나 행정의 의지는 사실 무관심에 가깝다는 지적이다.

홍성군은 고려 이후 홍주로 불려왔으나 1914년 일제에 의해 민족혼을 말살하는 수단으로 강제로 홍성으로 개명한 이후 현재에 이르고 있기 때문이다.

본지의 여론조사 결과에서도 90%에 가까운 주민들이 홍성의 옛 고유지명이 홍주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고 답한 것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따라서 홍성의 옛 지명인 홍주를 되찾아야 한다는 의견도 70%에 이르고 있다. 반면 홍성의 지명을 홍주로 바꿔야 한다거나 홍주지명역사가 1000년이 되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지역주민들의 절반 가까이가 ‘바꿔야 한다’는데 동의하거나 ‘알고 있다’고 답한 결과를 볼 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주민들의 의견수렴이고, 이를 위한 홍보가 절실하다는 결론에 이른다.

우선 군차원에서 지명변경의 필요성을 홍보하고, 주역주민들의 반대의견을 경청해 여론을 수렴하여 주민들을 설득할 필요성에 제기되고 있다. 한편으로는 전문가 등의 참여를 통해 주민들의 의견을 통합 할 수 있는 전략 제시도 필수적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최종적으로 주민들의 의견을 다시 수렴하고 필요에 따라서는 주민투표 등의 실시도 한 방법이 될 수 있다.

홍주지명 되찾기에 대한 중요성은 일제에 의해 강제로 개명된 지명에 대한 역사적, 문화적 자주주권에 대한 회복의 문제다. 충남도청소재지, 충남서부지역의 중추 거점지역으로서의 위상과 번영, 이미지에 대한 일체감의 확보와도 직결되는 문제다. 이를 통해 행정중추도시로서의 과거 홍주목의 영광과 번영의 재현에 기본적인 목적이 있다.

결과적으로 지역공동체 구성원들의 공감확보를 통한 자치단체장의 확고한 의지가 전제되는 가운데 역동적인 전략구상이 필요하며 전제돼야 한다. 이를 통해 도심의 공동화 극복을 위한 방안, 지역발전과 성장동력의 연계성이 필요하다. 이러한 전략적 측면이 전제되는 가운데 우리 조상들의 무형유산이나 다름없는 사라진 ‘옛 고유지명을 되찾는 일’을 적극 추진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지원해 민족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떳떳하게 후세에 물려줄 수 있어야 한다.

지명을 바꾸는 행정 절차는 시·군·구에서 대상지를 선정해 실태조사를 거친 후 기본계획 수립, 지방의회 의견을 수렴하고 주민공청회 등을 통해 해당지역 주민들의 의견을 반영해 조정계획을 광역자치단체에 승인 신청을 하면 가능하다.

지명변경 신청을 받은 광역자치단체는 현지조사와 타당성 분석을 통해 행정안전부에 승인을 요청하고 승인이 나면 광역자치단체에서는 준비지침을 시·군·구에 시달한다. 시·군·구는 조례 제정 후 공포하고 실무 작업단을 구성해 행정적으로 지명을 바꾸는 작업을 시행한다. 지명이 바뀌면 해당 지역 주민들이 우려하던 부분 가운데 하나인 주민등록과 호적상의 지명처리는 시스템에서 일괄적으로 처리하므로 쉽게 해결 될 수 있는 문제다.

최근 전국적으로 많은 지자체에서 지역 명칭 600주년 또는 100주년 기념행사를 시행·기획하고 있다. 600주년은 15세기 초에 정립된 8도 체제를 근간으로 한 것이며, 100주년은 1914년 일제가 강제로 실시한 행정구역 개편에 따른 것이다. 하지만 홍주지명의 역사는 이와는 궤를 달리하고 있다. 지난해인 2014년에 100주년을 기념하는 것은 1914년의 행정체제 개편에서 연유한 것이기 때문이다.

홍주라는 지명은 995년(성종 14) 도단련사가 파견된 이후 1012년(현종 3) 지주사를 두었으며, 1018년(현종 9) 3군 11현을 관할하던 시기 어느 때인가 운주에서 홍주로 바뀐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이러한 변화를 거듭하는 과정에서 면면이 살아 이어오던 고유지명인 ‘홍주’는 1941년 홍주면이 홍성읍으로 승격하면서 종적을 감춰버리는 과정을 겪게 된다. 한때 ‘홍주’가 계수관 고을이 될 때에는 ‘도(道)’의 명칭에 공홍도(公洪道), 홍청도(洪淸道), 충홍도(忠洪道), 홍충도(洪忠道)로 불리며 ‘홍(洪)’자가 붙을 정도였고, 경기도 평택에서 충남 서천에 이르는 고을을 관장한 정도로 중추도시가 ‘홍주(洪州)’였다.

1914년의 행정구역 개편에 앞서 을미개혁 일환으로 1895년 전국 8도를 23개부로 재편성하는 부제가 실시된다. 그리고 부제 시행 이듬해에 다시 전국적인 행정구역 개편이 있었다. 23부제에서 다시 8도제로 환원하는 것으로, 이 가운데 함경·평안·충청·전라·경상도를 북도와 남도로 나눠 전국을 13도로 재편하는 것이다. 이로써 1896년 행정구역은 총 13도 8부 1목 332군으로 개편됐다. 이후 행정구역은 1914년 대대적인 변화를 맞이하는데, 이는 일본 제국주의 입장에서 식민지 경영의 기초 사업 중 하나인 영토현황 파악이 목적이었다.

우리가 주목할 대목은 일제는 강점 후 만 3년 4개월만인 1913년 12월 29일 총독부령을 통해 전국적이고 대대적인 행정구역 개편안을 공포하고 1914년 4월 1일부로 시행한다. 개편 방향은 식민 통치의 편의를 위해 거점도시 12부를 두는 것과 더불어 전국의 군을 통폐합하는 것으로 면적·인구·경제력 규모를 조정하는 것이었다. 이 조치로 전국의 군은 332읍에서 220읍으로 줄어 그 행정구역과 명칭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홍성의 옛 고유지명 ‘홍주(洪州)’라는 이름을 되찾아 바로세우는 일은 지역의 정체성을 찾는 일이라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바로 정명(正名)이기 때문이다. 정명이란 ‘명분을 세운다’거나 ‘이름을 바로 잡는다’는 뜻이다. 이 세상의 모든 사물에는 이름이 있고,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는 명분이 있다. 이처럼 지명은 지역의 과거사를 압축적으로 보여 준다.

조선시대 지방행정체계는 부(部)-방(坊)-계(契)-동(洞) 4단계였다. ‘전국 방방곡곡’이란 말은 여기에서 나왔다. 그러나 한자식 행정체계와는 무관하게 우리는 크든 작든 모든 마을을 ‘고을’이라고 했고, 고을의 수령은 높든 낮든 모두 ‘사또’라고 불렀다.

우리의 토박이 고유지명은 조선시대 한자 지명화됐다가 일본 강점기에는 유래조차 짐작할 수 없을 정도의 엉뚱한 지명으로 변질됐다. 홍성의 옛 고유지명 ‘홍주(洪州)’역시 일제 강점기시대 전통도 관습도 정체성마저도 팽개친 채 일시적 편의만 좇아 합성된 지명이라는 점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이 기사는 지역공동체캠페인사업으로 한국언론진흥재단·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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