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엔 대한민국의 영웅 독립투사들의 혼이 살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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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엔 대한민국의 영웅 독립투사들의 혼이 살아 있다
  • 글=한관우 발행인/자료·사진=한기원 기자
  • 승인 2015.11.26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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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국항쟁의 진원지를 찾는 역사기행 <16>

충청 독립운동가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다

독립운동가의 후손들의 삶은 가혹하리만큼 어려운 현실
‘친일하면 3대 흥하고 독립운동하면 3대가 망한다’교훈
의병활동·독립운동 현실비판에 바탕 개혁정신으로 분출
호국충절·청렴결백은 충청정신의 표상 홍주정신의 핵심

 

▲ 일본 가나자와의 윤봉길 의사 유해가 묻혀 있던 암장지에 국화 몇 송이와 태극기가 윤 의사의 혼과 정신을 지키고 있다.


충절과 충의의 고장이라 불리는 충청도, 특히 옛 홍주목사 고을에는 충신, 열사 등이 많이 배출됐다. 우리고장 독립운동가를 중심으로 충청출신의 항일독립운동가들의 삶과 정신을 재조명함으로써 이를 통해 우리의 역사와 문화에서 우리고장의 역사인물이 차지하는 가치와 의미를 새롭게 정립해야 한다. 자신의 목숨은 물론 가족의 생명과 재산까지 내놓으며 조국을 위해 헌신한 독립운동가들의 삶이 존경받는 사회, 독립운동가들의 삶과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고 순국선열들의 희생정신을 기리는 반듯한 사회가 절실히 필요한 오늘이다. 지금, 독립운동가들의 후손들의 삶은 가혹하리만큼 어려운데, 친일인사들은 호가호위하는 현실이다. 국가의 무성의한 정책으로 그들의 눈물은 마를 날이 없다는 사실은 우리 모두가 명심할 일이다. 이러한 점에서 역사를 빛낸 위인들이 충청도 땅에서 일궈낸 역사적 흔적들은 현대인들에게 소중한 교훈을 전해주고 있다. 이번 취재를 통해서 위인들의 발자취, 특히 항일 독립운동 전체가 하나의 맥락에서 이어져 왔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지금까지 독립운동가 개인을 기리는데 치우치다보니, 실질적으로 가치를 제대로 조명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안타까운 일이다. 을사늑약이 체결된 1905년부터 임시정부 활동 기간까지 만주를 중심으로 일어났던 독립운동의 실체와 흐름을 종합적으로 연구할 필요성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많은 사람들이 조선의 시대정신으로 ‘선비정신’을 꼽는다. 대개의 사람들은 ‘선비’하면 대쪽처럼 곧은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떠올린다. 나라와 백성을 위해 목숨을 걸고, 직언과 상소를 올리는 엄청난 용기와 정의감을 가진 사람이 바로 선비다. 사회의 대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선비정신은 임진왜란 때 의병활동, 일제강점기 독립운동, 근현대기 학생운동 등에 그대로 계승됐다. 예로부터 비롯된 선비정신은 우리나라의 민주화에도 적지 않은 공헌을 했다. 그렇다면 오늘날에 필요한 선비정신은 무엇일까. 충청도 땅과 홍주 땅의 역사위인들의 삶과 활동 등을 현장취재와 사료 등을 통해 정신사적 의미와 가치 등을 담아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연변조선족자치주에 있는 대성학교 옛터.


역사는 스스로 고찰하고 사색하면서 사고할 때 그나마 올바른 역사의 정의가 바로설 수 있다. 우리의 역사는 왜곡된 기록으로 편집되면서 정신의 본질과 의식조차 질식해 버린 슬픈 자화상으로 다가오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이를 극복해 보기 위한 일환으로 독립운동사에 커다란 획을 그은 우리지역 독립투사와 열사들의 발자취를 통해 그들의 정신을 되새겨야 한다. 일제 강점기 중국을 무대로 펼쳤던 항일독립투사들의 역사적 삶의 가치를 통해 충청과 홍주출신 독립운동가들의 삶과 활동상을 재조명하는 일이 그래서 중요하다. 역사적 사실에 기초한 삶의 여정을 통해 현재까지 남아있는 유적지 등의 현장을 기록으로 남겨야 하는 이유다.

우리가 흔히 하는 말로 ‘친일하면 3대가 흥하고 독립운동하면 3대가 망한다’는 오욕의 역사는 현재까지도 진행형이다. 이 땅은 어떤가. 가까스로 친일파 재산을 환수할 수 있는 법을 마련해 체면치레를 했지만 크게 달라지진 않고 있다. 친일파와 독립운동가 3대가 겪는 각각 부와 가난의 대물림의 양극화는 여전하기 때문이다. 친일파 후손들은 ‘과거사는 이제 더 이상 들추지 말자’는 병풍 뒤에서 부귀를 누리고 있고, 독립운동가 후손들은 유공자라는 명예만 쥐고 있을 뿐 가난에 허덕이고 있다. 양극의 갭을 무시하기엔 청산할 역사가 아직 넓고 깊은 이유다. 무엇보다도 더 울분이 느껴지는 것은 일제와 그 부역자들에게 목숨은 물론이려니와 재산까지 강탈당한 독립운동가들이 겪은 고초다. 일제의 핍박에 가족뿐 아니라 땅 한 뼘조차 건사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그동안 법의 미비를 들어 빼앗긴 그들의 재산에 대해 외면해 왔다. 국민들도 친일파 재산 환수에만 목소리를 높이다보니 친일파와 일제에 재산을 빼앗긴 독립운동가들의 재산을 되돌려 주는 문제에 대한 세밀한 관심을 놓쳤다. 그들의 후손들이 빼앗긴 조상들의 땅을 되찾았다는, 그래서 70년 세월이 흘러 ‘진정한 광복’의 봄을 느끼게 해줄 수 있다면 이제라도 우리 사회가 나서야 하지 않을까.

광복 70년,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까지도 미완성의 광복, 진정으로 우리 조국에도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분명한 것은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친 독립투사 당신들은 오늘 우리의 영웅임에 분명하다. 이 나라와 우리민족의 자주독립을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았던 진정한 민족 영웅들을 후세들이 똑바로 알고 만날 수 있어야 한다. 광복 70년, 진정한 민족의 광복이 되기 위해서는 선열들의 독립정신을 계승하고 친일역사 청산과 독립유공자 발굴이 시급하다. 더불어 국내외의 묻혀 있는 관련자료 등의 체계적인 수집을 위한 노력도 절실한 실정이다.

광복 70주년을 맞은 한국사회에서는 여전히 과거를 어떻게 기억하고 표상할 것인가를 둘러싼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역사를 올바로 정립하는 것은 국가가 왜곡한 기억에 도전하는 것이며, 현재까지도 진행형인 독립운동, 민중운동, 민주화운동 등은 투쟁의 의의를 갖고 있다. 역사를 정리하고 기록하는 것은 무엇보다 이러한 사건을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세대를 향한 것이며, 또 동시대인이면서도 밖에 있던 이들을 향한 것이기도 하다. 정당한 기억의 공동체를 확산해가는 것은 곧, 민주주의의 가치를 공유한 공동체가 확대되는 길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역사의 정리는 밖을 향해서만이 아니라 직간접으로 참여하고 관여했으며, 지금까지도 관련이 있거나 감당해야 하는 이들을 향한 것이기도 하다.

충남도청소재가 된 이곳 홍주 땅은 과거 평택에서 서천에 이르는 행정구역을 관할한  곳이기도 하다. 충청의 기맥(氣脈)인 금남북정맥(錦南北正脈)이 크고 작은 산을 펼쳐내며 서쪽으로 뻗어가고, 천리 물길의 금강이 산과 평야를 에두르고 품어내며 서해로 굽이쳐 흘러가는 여유와 풍요의 땅이다. 산과 강, 바다가 넉넉하고 풍요로운 조화를 이루는 충청은 선사시대부터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찬란한 역사를 꽃피워 왔고, 빛나는 정신문화를 가꿔 왔다. 역사·문화의 본류인 고대 백제는 금강과 서해를 거점으로 동아시아 문화강국으로서의 위상을 드높였다. 개방성과 진취성을 바탕으로 중국, 일본 등과의 부단한 문화 교류를 통해 독특한 문화를 창조하고 전파했다. 그 유산은 현대에서도 충청인의 역사·문화적 자산이 되고 있다. ‘산천이 평평하고 서울과 가까운 위치여서 사대부들이 모여드는 곳’인 충청도, 특히 홍주 땅은 예로부터 나라의 동량과 걸출한 인물들이 많이 배출돼 왔다. 조선시대 기호학파로 대표되는 기호유교문화권을 형성하며 충청정신의 뿌리인 충효정신, 선비정신, 예의정신을 발전시켜 왔다.

유교문화의 전통은 조선 후기 의병활동과 민족운동, 독립운동 등 현실 비판에 바탕을 둔 개혁정신으로 분출되기도 했다. 이처럼 호국충절·청렴결백의 전통과 양반문화의 예의를 숭상하는 충효·선비정신, 개방성과 진취성으로 대표되는 개척정신, 여유와 포용의 기품이 담긴 화해와 상생의 정신은 충청정신의 표상이면서도 홍주정신의 핵심이다. 이러한 충의정신은 미래 지향적인 가치까지도 함축하고 있으며, 이는 곧 우리들에게 던지는 보편적 시대정신인 것이다.

옛 간도는 지금의 연변지방에 해당하는 곳으로 현재 약 100만 명에 가까운 조선족이 살고 있다. 중국내 유일한 조선족자치주. 이는 미국에 형성된 한인타운이나 중앙아시아에 이주 당한 옛 소련에 산재해 있던 조선(고려)사람들의 마을과는 근본적으로 성격이 다르다. 현재 중국의 통치하에 있는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와 장백조선족자치현은 그곳에 살고 있는 조선족들이 만주에 살고 있는 조선사람들의 자치를 위해 국공전쟁이 있어났을 때와 만주에서 빨치산 투쟁을 할 때 중국공산당과 함께 투쟁한 결과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두만강을 넘어 간도지역에 정착한 것은 역사적으로 오래 전의 일이다. 요, 금, 원나라 시기에는 조선사람들이 납치되어 갔거나 강제로 이주 당한 사람들이 있었고, 병자호란(1836~1637년) 후에도 납치된 포로들이 팔려가서 중국에 정착한 흔적이 있다. 간도는 만주의 연길, 화룡, 왕청, 훈춘(도문) 4현을 망라한 지역이며 여기에 백두산 북쪽의 안도와 돈화 3현을 합쳐 지금의 조선족자치주가 형성되었다. 북간도라 불리는 이곳에서 조선인의 개척이 서쪽으로 확산되면서 북간도 서쪽 백두산 서남쪽의 압록강 주변을 남만주 또는 서간도라고 불렀다. 간도의 동과 서를 구분해 동간도와 서간도라 불렀지만, 조선인이 개간한 이 지대를 포괄하여 일반적으로 간도라고 말한다. 한말 의병운동과 계몽운동이 구국운동으로 전개되면서 간도지역으로 애국지사들의 망명과 함께 간도의 독립운동이 본격화 되었다. 독립운동의 과정을 통해 중국의 곳곳에는 아직도 대한민국이 살아있다. 일본 땅 구석진 곳에서도 선조들의 정신이 살아 숨 쉬고 있다.<끝>

 

 

<이 기획기사는 충청남도 지역언론 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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