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꾼 유태헌·한관우 기자의 금북정맥 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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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꾼 유태헌·한관우 기자의 금북정맥 탐사
  • 유태헌·한관우
  • 승인 2013.05.25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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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포지역 역사·문화·풍속 이야기 ①

 

▲ 서해에서 3km 지점에 형성돼 새우젓배 등이 드나들던 내포지역의 대표적인 광천 옹암포구. 지금은 홍보방조제로 막혀 쇠락했다.

 

 

 

 


찬란한 역사·문화 꽃피운 충남의 중심 기맥 
 

찬란한 역사·문화 꽃피운 충남의 중심 기맥  

 

 

 

 

 

 

금북정맥은 백두대간의 충청권 줄기로 충청지역의 핵심적인 생태 축을 이루고 있는 충남지역의 역사·문화·풍속의 보고이다. 특히 내포지역은 수만 년 동안 축적된 태고의 전설과 민중의 삶이 질퍽한 설화들을 보듬고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운하가 될 뻔한 굴포운하지 등의 역사와 문화, 풍속 등을 발견할 수 있는 곳이다. 충청도 13개 시·군에 걸쳐 있는 금강의 북쪽 울타리를 형성하는 도상거리 약 282.4km의 금북정맥 산줄기를 중심으로 탐사를 통해 내포지역의 역사와 문화, 풍속 등을 15회에 걸쳐 탐색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충남의 기맥, 금북정맥(錦北正脈)은 충남지역 역사 문화의 보고이다. 남으로 뻗어 내리다가 다시 북으로 치솟고 황해의 푸른 물결을 탐내듯 서해로 굽이치는 금북정맥은 수만 년 동안 축적된 태고의 전설과 민중의 애환이 서린 설화를 보듬고 있다. 금북정맥의 도도한 산줄기와 수 천 갈래의 산자락에는 한마디로 형용하기 어려울 만큼 다양한 역사·문화가 찬란한 꽃을 피우고 있다. 백제문화의 중심지이자 내포문화의 발상지이고 삼국시대와 고려시대,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저마다 독특한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문화유산은 금북정맥이 지니는 총체적 역사의 특징을 보여준다.

금북정맥은 단순한 산줄기 이상의 역사적 가치를 지닌다. 천혜의 생태환경을 지닌 삶의 터전이요, 유구한 역사문화의 생성과 발전을 함께 해온 충남 역사의 중심축이다. 나아가 충절과 구국의 정신, 온유하면서도 은근한 선비정신으로 대표되는 충남 정신문화의 원천이기도 하다. 금북정맥은 격동기인 근대사의 아픔을 간직한 곳이기도 하다. 동학혁명의 왕성한 활동 근거이자, 천주교의 성지로도 역사적 의의를 지닌다. 태안 백화산에는 동학혁명의 아픔이 서린 유적들이 있고, 천안과 홍성, 예산, 서산, 청양 등 금북정맥의 산자락 곳곳에는 천주교 성지들이 산재해 있다.

 

 

 

 

 

 

▲ 중장비를 동원해 메워지는 옛뱃길의 물길을 파내고 있다.


내포(內浦)의 사전적 의미는 '안~개'를 말하지만 지리적으로는 바닷물이 육지 깊숙이 들어온 만(灣)에 들어선 포구를 뜻하는 말이지, 지명은 아니다. 내포지역의 범위는 역사적으로 고정돼 있지 않다. 다만 후대에 갈수록 금북정맥의 서북부지역, 즉 가야산 주변의 10여개 고을을 통칭하는 의미로 확대돼 일컬어 왔다. 고문헌에도 내포지역은 상황에 따라 지역이 다르게 표현되고 있다. 이중환의 택리지(擇里志)에는 가야산 일원 10고을인 태안, 서산, 당진, 홍주, 예산, 덕산, 결성, 해미, 신창, 면천지역을 내포로 구분하고 있다. 또 조선시대에는 홍주, 보령, 서천, 임천, 한산, 남포, 청양, 정산, 홍산, 비인 등 10군현을 포함시키기도 했다. 영조실록(英祖實錄)에는 홍주목에 속한 18군현인 면천, 서산, 태안, 덕산, 남포, 결성, 예산, 해미, 당진, 보령, 서천, 온양, 홍산, 청양, 아산, 신창, 비인, 평택 등을 내포지역으로 보기도 했다.

충남 서북부지역인 내포지역은 바로 이와 같은 안~개가 발달한 곳이 많다. 우선 아산만으로 들어가는 삽교천, 무한천, 곡교천에 여러 포구가 발달했다. 삽교천 입구에는 선장포구가 있었고, 안쪽으로는 구만포(하구로부터 25킬로미터), 내포 등의 포구가 있었다. 또 석문방조제와 대호방조제가 들어선 지역에도 여러 포구들이 발달했으며, 특히 당진 대호지면 일대와 서산 성연면의 명천포구는 유명했다. 아직도 가로림만 일대에는 많은 포구들이 있다. 또 천수만 일대에도 모산만과 보령방조제 안쪽의 해만에는 광천 옹암포(독배)와 같은 유명한 포구가 발달했다. 이처럼 해만이 내륙 깊숙이 들어와 수많은 포구를 만드는 지형은 한반도의 다른 곳에서는 좀처럼 찾기 힘들다.

그런데 왜 이 지역에 이와 같은 '안~개'가 발달했을까. 이 지역은 산세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흔히 '비산비야(非山非野)'라 해 높은 산이 별로 없는 가운데 낮은 구릉들이 발달했고, 구릉들 사이로 작은 천(川)이 발달해 바다로 흘러들어가고 있다. 또 바닷물이 작은 천들로 밀려들어오는 지형으로 되어 있다.
조수가 밀려들어오면 작은 천들은 만(灣)이 되고, 바닷물이 빠지면 천변은 갯벌과 갈대가 무성한 해택지(海澤地;밀물 때에는 물속에 잠겨 있다가 썰물이 되어 바닷물이 빠지면 드러나는 개펄)가 되는 것이다. 물론 이 지역에 산이 없는 것은 아니다. 금북정맥은 경기도 안성의 청룡산에서 발원하여 남으로 내려와 연기 의랑치, 천안 차령, 온양 송악을 거쳐 청양의 사자산, 구봉산, 백월산을 거쳐 오서산으로 이어지고, 결성의 보개산, 홍성의 백월산, 예산의 덕숭산, 가야산, 서산의 성국산, 팔봉산, 태안의 지령산, 안흥진으로 맥이 이어진다.

또 백월산은 남으로 보령의 성주산, 남포의 옥마산으로 이어진다. 금북정맥은 북쪽과 서쪽의 내포문화권과, 남쪽과 동쪽의 금강문화권을 구분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서북쪽으로 치고 올라간 금북정맥의 잔 줄기들은 서산, 태안 일대에 비산비야의 작은 구릉들을 만들어 놓았다. 그리고 동쪽의 삽교천과 무한천 일대에는 이렇다 할 산이 없는 가운데 충남 제일의 내포(예당)평야가 만들어진 것이다.

 

 

 

 

 

 

 

 



선진문물 유입통로 불교유적 보고 

내포지역은 북쪽과 동쪽의 아산만, 서쪽의 서해바다 등 3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다. 그리고 수많은 작은 천들이 내륙 깊숙이 들어가면서 '안~개'를 만들어 놓았다. 따라서 이 지역에서 수운이 발달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태안반도 북쪽과 아산만 일대에서부터 한양까지는 뱃길이 수월하였기 때문에 내포지역과 한양(서울)을 잇는 수운은 일찍부터 발달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내포지역은 서해바다인 서산과 태안, 당진 등을 통해 교역이 활발히 이루어졌고, 문화를 가장 빨리 받아들인 곳이기도 하다. 이처럼 내포지역은 서해운송로의 역할로 불교문화가 정착했고 수덕사, 보원사 등 역사가 깊은 큰 절들이 많이 생겨났다.

특히 태안반도는 선진문물의 유입통로로서 안전한 운송을 비는 마애불 등이 많이 있다. 태안 백화산 삼존마애불, 서산삼존마애불 등이 금북의 마루금 인근에 있다. 또한 '백제의 미소'라 불리는 서산마애삼존불<위 사진>은 실제로 후덕한 인품과 순수한 미소로 내포지역의 풍요로움을 말해주고 있는 상징이기도 하다. 또한 가야산 인근 지역은 한국 불교유적의 보고이기도 하다.

 

 

 

 

 

 

 

 

<이 기획취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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