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꾼 유태헌·한관우 기자의 금북정맥 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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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꾼 유태헌·한관우 기자의 금북정맥 탐사
  • 유태헌·한관우
  • 승인 2013.07.18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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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포지역 역사·문화·풍속 이야기 ⑦

 

▲ 봉수산 임존성. 광시면 마사리 쪽에서 오르면 최근 복원한 성벽과 묘순이 바위를 만날 수 있다.


백제 유민 한·투혼 서린 역사의 터전 봉수산 

부흥운동 격전지 임존성 우뚝
'의좋은 형제'이야기 무대 대흥
물안개 핀 예당저수지 환상적 


백제 부흥운동군의 최후 격전지였던 임존성(任存城, 사적 제90호)이 있는 봉수산(鳳首山,일명 대흥산·484m). 산세가 봉황의 머리를 닮았다고 봉수산으로 불린다. 예산군 대흥면과 홍성군 금마면 사이에 솟은 봉수산에 쌓은 임존성은 둘레 2.4㎞의 퇴메식 석성이다. 일부 복원된 구간을 제외하면 무너져 내린 옛 성곽 흔적들이 그대로 남아 있다. 백제 유민의 한(恨)과 투혼, 그리고 배신과 좌절이 겹겹이 서리고 맺힌 성이다. 울창한 숲길이 있고 전망도 빼어나다. 정상에 서면 예당저수지와 예당평야, 금북정맥의 산줄기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남서쪽의 성곽은 최근 복원해 옛 모습이 사라졌다. 동북쪽과 북서쪽의 나머지 구간에서는 무너져 내린 옛 성곽의 모습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임존성은 새롭게 복원해서 오히려 길손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드는 듯하다. 백제부흥의 한이 서린 역사의 터전인 이곳에 옛스러움이 사라지니 감동도 쇠락하는 것일까.

임존성은 주류성과 함께 백제 부흥운동의 거점지이자, 백제 역사에서 가장 규모가 큰 석성이었다. 의자왕이 나당연합군에 무릎을 꿇은 660년, 흑치상지와 의자왕의 사촌 복신, 승려 도침이 임존성에 백제 유민을 이끌고 모여 3년 반에 걸쳐 결사항전을 벌였던 곳이다. 당나라 소정방 군대도 신라 김유신 군대도 '군사가 많고 지세가 험해 이기지 못하고 다만 작은 목책만을 쳐서 깨뜨리고 퇴각'(삼국사기)해야 했던 성. 그러나 결말은 허무했다. 복신·도침·풍왕자의 대립과 유혈극, 흑치상지의 당나라 투항에 이은 역공으로 성은 함락(663년)돼 백제 부흥운동은 여기서 끝이 난다.

 

 

 

 

▲ 봉수산자연휴양림에서 바라본 대흥면 소재지마을과 예당저수지 전경.


이렇듯 임존성은 주류성과 더불어 백제부흥군의 2대 성지로 불리고 있다. 그런데 주류성의 위치에 대해서는 학설이 분분하나, 임존성에 대해서는 '임성군(任城郡)은 본래 백제의 임존성이었는데, 경덕왕이 이름을 고쳤다. 지금은 대흥군(大興郡)이다. 영현(領縣)은 2개이다.<삼국사기 잡지 지리 임성군 조>'에 명확하게 위치가 나와 있어 이견이 없다고 한다.

사비 도성이 함락되고 웅진성에서 의자왕이 항복했지만, 남부여가 종말을 고한 것은 아니었다. '주류성에서는 무왕의 조카이자 의자왕의 사촌 동생인 복신이, 임존성에서는 흑치상지가 남부여 부흥의 기치를 내걸었다. 소정방(蘇定方)이 백제를 평정하니, 흑치상지는 휘하의 무리를 이끌고 항복하였는데, 소정방은 늙은 왕을 가두고 병사를 풀어 크게 약탈하였다. 흑치상지는 이를 두려워하여 주위의 추장(酋長) 10여 인과 함께 달아났고, 도망친 이들을 불러 모아 임존산(任存山)에 의거하여 스스로 굳게 지켰다. 열흘이 되지 않아 돌아온 자가 3만이 되었다. 소정방은 병사를 이끌고 흑치상지를 공격하였지만, 이기지 못하니 마침내 200여 성을 회복하였다. 하지만 흑치상지는 주류성의 복신과는 달리 결사항전의 태도는 없었다. 결국 당나라 황제의 회유에 넘어가 661년 무렵에는 유인궤에게 투항하고 만다. 흑치상지가 떠난 후에도 임존성은 남부여 부흥전쟁의 철옹성으로 남아 있었다. 복신의 부흥군은 주류성과 임존성을 근거로 하여 부흥 전쟁이 끝나는 663년 10월까지도 나당군의 진입을 허용하지 않았다.'<삼국사기 흑치상지 열전>고 기록하고 있다. 흑치상지는 남부여 서부사람으로 달솔 겸 풍달군의 장수를 겸하고 있었다. 후삼국시대에는 고려 태조 왕건과 견훤이 이곳에서 전투를 벌였다고 전해지며, 삼국유사 등 일부 문헌의 기록으로는 '백제의 첫 도읍지'란 주장도 있다.

 

 

 

 

 

 

▲ 의좋은 형제 이야기의 실제 무대인 대흥 교촌마을(대흥면사무소 앞)에 세워진 의좋은 형제상.


한편 봉수산에 조성된 자연휴양림은 마을 전경과 예당저수지가 한눈에 보이는 명소로 인기를 끌고 있다. 등산로는 휴양림 쪽으로 오르는 코스와 대련사 쪽 코스, 광시면 마사리 쪽으로 오르는 임도 등 5개 코스가 있다. 마사리 쪽에선 굽이굽이 임도를 따라 차로 성벽 밑까지 오를 수 있다. 성곽 복원 공사장이었던 주차장에서 곧바로 성안으로 오를 수 있다. 복원한 임존성의 계단식 성곽 길을 잠시 오르면 널찍한 풀밭이 나타난다.
이 근처 성벽 밑에는 '묘순이 바위'로 불리는 커다란 바위가 있다. 사연인즉 '옛날 대흥현 고을에 엄청난 힘을 가진 장사인 묘순이 남매가 쌍둥이로 태어나 살았다고 한다. 그 시대에는 남매쌍둥이 장사가 함께 살 수 없었던 시대로 둘 중 한명은 죽어야 하는 운명이어서 남매는 목숨을 걸고 시합을 했다고 한다. 누이인 묘순이는 성을 쌓고, 남동생은 쇠나막신을 신고 한양에 다녀오는 시합이었다. 그래서 묘순이는 남동생을 이기기 위해 열심히 성을 쌓았고, 이제 성돌 하나만 올려놓으면 성이 완성될 무렵 묘순이 어머니는 한양에 간 아들이 시합에서 지면 죽는다는 사실을 알고 시간을 늦추기 위해 묘순이가 좋아하는 종콩밥을 해서 먹이기로 했다. 종콩밥을 해서 거의 먹을 무렵 남동생이 성 가까이 온 것을 본 묘순이는 깜짝 놀라 마지막 바위를 옮기다가 그만 바위에 깔려 죽었다'는 애절한 전설이 깃든 '묘순이 바위'가 성돌 밑에 받쳐져 있다. 지금도 묘순이 바위를 돌로 치면 "종콩밥이 웬수다"라는 흐느끼는 듯한 울림의 소리가 들린다고 한다. 여자보다는 남자를 더 생각하는 남존여비사상의 대표적인 서글픈 전설이 설화로 전해오고 있는 것이다.

옛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려 진한 형제애를 보여주었던 '의좋은 형제' 이야기의 실제 무대인 예산군 대흥면 상중·동서리(교촌마을)는 '의좋은 형제'마을로 불린다. 예당저수지를 끼고 있는 의좋은 형제마을은 고려 말에서 조선 초까지 이 마을에 살았던 고려 초 이성만·이순 형제의 이야기에서 유래한다. 형제가 서로 살림을 걱정해 자기 볏단을 몰래 넘겨주다가 만났다는 얘기로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려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이야기다. '효성이 지극한 형제는 부모가 죽자 3년간 시묘를 했다. 아침에는 아우가 형의 집으로 가고, 저녁에는 형이 아우의 집을 찾았으며 한 가지 음식이 생겨도 서로 모여 만나지 않으면 먹지 않았다'고 한다. 이러한 사연을 담은 비석이 연산군의 지시로 건립됐다. 바로 그 비가 '효제비'인데 1978년 이 마을에서 발견됐다. 이 비는 조선 초기 양식의 화강암 비석으로 이성만 형제의 갸륵한 행실에 대해 왕이 정문을 세워 표창하고 자자손손에게 영원히 모범되게 하라는 173자가 기록돼 있다. 효제비는 예당저수지가 축조되면서 수몰 위기에 처하자 대흥면사무소 앞으로 옮겨져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여정에 형제의 우애가 각별한 의미를 전하고 있다.

특히 봉수산에서 내려다보는 예당호반은 한마디로 장관이다. 저수지가 아니라 '강'으로 보인다. 그 폭은 바다가 펼쳐놓은 가슴 폭만큼이나 넓다. 1962년 만들어진 저수지는 4개면에 걸쳐져 있다. 한 폭의 거대한 수묵화를 펼쳐놓은 듯 시원한 물과 산, 하늘이 절묘한 여백으로 찰랑댄다. 예당저수지에서는 주로 붕어, 잉어를 비롯해 뱀장어, 가물치, 동자개 등이 잡히는데, 이곳의 어죽과 붕어찜은 식도락가들 사이에서는 꽤나 인기다. 낚시뿐만 아니라 안성맞춤이다. 40㎞에 이르는 둘레의 산책길은 걷기에 적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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