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꾼 유태헌·한관우 기자의 금북정맥 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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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꾼 유태헌·한관우 기자의 금북정맥 탐사
  • 유태헌·한관우
  • 승인 2013.08.26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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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포지역 역사·문화·풍속 이야기 ⑪

 

▲ 백화산 기슭의 동학혁명추모탑. 백화산 자체가 100년 전 목숨을 걸고 순교한 동학농민군들의 피와 한이 서린 역사의 현장이다.


국조 단군 영정 봉안 '태일전' 있던 태안 백화산 

동학혁명 아픔 서린 유적 산재
국보 마애삼존불입상 보존
백화산성 축조 왜구 침입 막아 

국조 단군 영정 봉안 '태일전' 있던 태안 백화산 동학혁명 아픔 서린 유적 산재 국보 마애삼존불입상 보존 백화산성 축조 왜구 침입 막아
금북정맥의 막바지에 다다를수록 산은 낮아지고 바다는 드넓게 펼쳐진다. 낮은 산지를 오르며 삼면으로 둘러싸인 바다를 내려다보면 훼손된 금북정맥의 안타까움이 다소 진정되는 듯하다. 어느 고장에나 그 곳을 대표하는 명산이 있듯 태안에는 백화산이라는 이름의 명산이 있다. 작은 편에 속하는 산이지만, 크고 작은 바위로 뒤덮인 모습은 특이하면서도 강건한 느낌을 주는데, 마애삼존불상과 더불어 태을암이 있는 성스러운 관음도량으로 태안의 진산이자 영산으로 불린다. 산 전체가 흰 돌로 덮여 있으며, 모양이 괴이하다고 해 백화산(白華山·284m)이라 불린다. 이 산은 한양을 등지고 있어 태안에는 과거에 급제한 사람이 없다고 전한다. 백화산성이 있는 정상에서 조금 내려오자 공군부대가 정상부위를 막고 있다. 공군부대 때문에 생긴듯한 도로가 백화산 정상까지 올라와 있다. 조금 더 내려가자 산 중턱쯤에 태을암이 자리 잡고 있는데, 이곳에 그 유명한 태안마애삼존불상이 있다. 서산마애삼존불상과 마찬가지로 백제시대에는 태안에서 웅진으로 물품을 운반하는 긴 여정을 무사히 다녀올 수 있도록 큰 바위에 부처를 새겨 기원했다고 전한다.

이곳 백화산에는 100년 전 목숨을 걸고 투쟁하다 순교한 동학농민군의 아픔이 절절하게 배어 있다. 전봉준이 이끄는 동학군이 전주성에서 관군과 조건부의 휴전을 하고 있던 1894년 9월 30일, 태안방어사의 집에선 군수와 안무사 등이 비밀모임을 갖고 이미 투옥돼 있는 동학군 우두머리 30여명을 처형할 계획을 짠다. 이 내용을 이방이 엿듣고 동학교도에 알리자 다음 날 아침 동학군 수만 명이 태안관아를 습격해 처형 직전의 동학 두목 30명을 구한다. 이어 충청 서부지역 동학농민군들은 10월 24일 해미 승전곡에서 큰 승리를 거두고 당진을 거쳐 예산까지 나갔으나 28일 홍주성 전투에서 최신식 무기를 앞세운 일본군과 관군의 연합작전에 무너져 무려 1000여명이 무참히 희생된다. 홍주성에서 대패해 쫓긴 동학농민군들이 패전을 거듭하며 마지막으로 항전한 곳이 백화산이라고 전한다. 온갖 모양의 바위들과 푸른 수목이 잘 어울려 있는 모습, 아름다운 산의 정상에 오르면 태안읍 전체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천수만 쪽의 드넓은 노해며, 굽이굽이 이어진 땅 자락 사이로 마치 호수처럼 들어 앉아 있는 작은 만(灣)들, 먼 바다 섬들을 바라보는 기분은 참으로 각별하다. 백화산에서 바라본 태안은 국립공원답게 바다와 산과 평야와 도시가 어우러져 산수화보다 아름다운 경관이다.
 

▲ 태안읍 시가지를 감싸 안고 있으며, 흰 돌로 덮여 있는 백화산.

 

 


태안읍에 산다는 80을 넘긴 가재모 씨는 "백화산에는 고귀한 가치와 역사성을 지닌 문화 유적이 알뜰히 보존되고 있는 곳"이라고 말한다. 대표적인 것이 국가로부터 1966년 보물 제432호로 지정되었다가 2004년 8월 국보 제307호로 지정된 '태안 마애삼존불입상(泰安磨崖三尊佛立像)'이란다. 또 고려 충렬왕 13년(1286년)에 축조된 '백화산성'이 있다. 높이 3m정도 되는 이 산성은 현재 100m정도 남아 있는데, 문화재 기념물 제212호로 지정돼 있다. 조선 초기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 둘레 700m 정도의 성을 쌓았다고 전해지나 삼국시대의 산성을 고쳐 쌓았을 가능성도 있다고 추정하고 있다. 백화산성에 대해서는 명확하지는 않지만, '신 동국여지승람'에는 '1417년(조선 태종 17년) 왕이 왜구들의 침범으로 황폐된 태안군의 복구를 명하여 성을 쌓고 수리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이 산성의 성벽은 거의 무너진 상태이며, 성 안에는 옛날 '소태(蘇泰)'라는 작은 마을과 우물이 있었다고 전하는 우물터 2곳과 서산 북주산과 부석면의 도비산에 연락을 취하던 둘레 약 18m, 높이 5m쯤 되는 봉수대가 설치돼 있다. 지금은 터만 남았지만 국조 단군의 영정을 봉안했던 '태일전'이 있었던 곳도 이곳이다. 태일전은 도교 신앙과 관련이 있는듯한데, 조선 초기부터 45년마다 한 번씩 아홉 방위를 뜻하는 구궁(九宮)을 차례로 천궁(遷宮)하면서 명산을 가려 '태일(太一)'이라는 이름의 전각을 짓고 왕실의 안녕과 번영, 국태민안을 위해 임금이 향을 내려 제사를 지낸 곳이라고 한다. 산 중턱에는 사찰도 하나 있는데 '태을암(太乙庵)'이라는 이름의 아담한 암자다. 역시 전통 사찰 제40호로 등록돼 보호를 받고 있다.

아무튼 금북정맥은 단순한 산줄기 이상의 역사적, 문화적 가치를 지닌다. 천혜의 생태환경을 지닌 삶의 터전이요, 역사와 문화의 생성과 발전을 함께 해온 충남 역사의 중심축이다. 나아가 충절과 구국의 정신, 온유하면서도 은근한 선비정신으로 대표되는 충남 정신문화의 원천이기도 하다. 금북정맥은 격동기인 근대사의 아픔을 간직한 곳이기도 하다. 동학혁명의 왕성한 활동 근거이자 천주교의 성지로도 역사적 의의를 지닌다. 태안 백화산에는 동학혁명의 아픔이 서린 유적들이 있고 천안과 당진, 서산과 홍성, 예산, 청양 등 금북정맥의 산자락 곳곳에는 천주교 성지들이 산재해 있다.

 

 

 

 

 

태안초등학교 뒤쪽으로 5분 정도 오르면 동학혁명추모탑이 보인다. 추모탑 위로 고갯깃을 따라 조금 더 올라가면 교장바위가 세월의 무게를 견디며 버티고 서 있다. 태안군청 관계자와 향토소설가 지요하 씨에 의하면 백화산 중턱의 이 바위는 동학농민군 수백 명을 붙잡아 놓고 목을 조르거나 몽둥이로 죽인 곳이라고 한다. 교장바위에서의 학살은 시체가 쌓여 산을 이루고 피가 바다를 이루었을 정도로 처참했다고 전한다. 바위 이름도 목을 졸라 죽인다는 교살(絞殺)과 몽둥이로 때려죽인다는 장살(杖殺)에서 유래한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교장바위의 표지판은 잘못돼 있었다. 당시 태안국민학교의 일본인 '교장(校長)'이 불리한 상황에 있던 조선인 학생들을 선처해주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동학농민들이 이 글을 본다면 원통해 할 일이다. 이제라도 바로 잡아야 할 것이다. 비단 교장바위 뿐만 아니라 백화산 곳곳에는 관군과 일본군에 맞서 싸웠던 동학군들의 흔적이 지금까지도 그대로 남아 있다. 백화산 자체가 동학농민혁명의 피와 한이 서린 현장이요, 역사적 증거인 셈이다.

충청지역은 서해바다를 통해 들어온 많은 선진 문물 때문에 천주교도들의 접근이 빨랐고, 그만큼 천주교신자들의 아픔의 역사도 많은 흔적을 남겼다. 특히 박해를 피해 산 속에 몰려든 천주교신자들은 금북정맥에서 교우촌을 만들어 살았고, 때로는 순교했던 것이다. 천안의 성거산 성지, 공주 수리치골 성지, 청양 다락골 성지, 당진 합덕의 솔뫼성지, 홍성의 홍주순교성지, 서산의 해미성지 등이 금북정맥의 대표적인 천주교 성지이며, 역사의 현장으로 지금까지 남아 있다. 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태안지부 관계자들이 전하는 많은 이야기를 들으니 금북정맥이 전해준 못 다한 이야기가 아직도 많이 남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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